[시스템사고] 도로를 넓혔는데 왜 차가 더 막힐까?
[시스템사고] 도로를 넓혔는데 왜 차가 더 막힐까?
'증상 처방'이 부른 정책 저항
1. 열심히 노를 저어도 왜 배는 제자리일까?
살다 보면 참 이상한 일들을 자주 겪게 됩니다. 분명 문제를 해결하려고 엄청난 돈과 노력을 기울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상황이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더 악화된 경우입니다.
- 살을 빼려고 무작정 며칠을 굶었더니, 극심한 요요현상이 찾아와 이전보다 살이 더 찌는 현상.
- 팀의 야근을 줄이려고 서류 보고 절차를 간소화했더니, 소통 부재로 큰 실수가 터져 수습하느라 야근이 배로 늘어나는 현상
- 출퇴근길 교통체증을 해소하려 수천억 원을 들여 왕복 4차선 도로를 8차선으로 넓혔더니, 얼마 안 가 그 넓어진 도로가 다시 주차장으로 변해버리는 현상
시스템 사고(System Dynamics)에서는 이처럼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간의 개입이 시스템 자체의 반작용에 의해 약화되거나, 무력화되거나,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현상"을 '정책 저항(Policy Resistance)'이라고 부릅니다(Sterman 2000: 5-12).
왜 우리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에서 매번 이런 허탈한 '정책 저항'을 만나는 걸까요?
2. '보상 피드백'의 오해 : 착한 '보상(Reward)'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시스템 사고의 거장 존 스터만(John Sterman) 교수는 그의 저서 『Business Dynamics』에서 정책 저항의 근본 원천으로 '보상 피드백(Compensating Feedback)'을 지목합니다(Sterman 2000: 189-190).
여기서 우리가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Compensating(보상적)'이라는 표현입니다.
보통 우리말로 '보상'이라고 하면 잘했다고 상을 주는 '포상(Reward)'이나 손해를 메워주는 '배상'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시스템 과학에서 말하는 'Compensating'은 물리나 생물학에서 쓰는 "상쇄하다", "원상 복구하다(Offset / Counteract)"라는 뜻입니다.
즉, 외부에서 누군가 강제로 시스템의 상태를 바꾸어 놓으면, 시스템은 스스로 깨진 균형을 되찾기 위해 외부 개입의 효과를 반대 방향으로 완벽히 상쇄(Compensate)시켜 원래 상태로 되돌려놓으려는 강한 고집을 부립니다. 이것이 바로 보상 피드백입니다.
우리가 문제의 근본 원인이 아닌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건드릴 때, 시스템 내부의 보상 피드백 기제들이 일제히 작동해 우리의 노력을 원점으로 돌려놓습니다.
3. Sterman이 들려주는 두 가지 명쾌한 이야기
스터만 교수는 우리가 왜 그토록 자주 정책 저항의 덫에 걸리는지, 그리고 보상 피드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두 가지 아주 쉬운 이야기로 설명합니다(Sterman 2000: 189).
① 풍선 쥐어짜기 비유 : 증상만 누르면 다른 곳이 터진다
바람이 빵빵하게 찬 풍선의 한쪽이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다고 해봅시다. 그 보기 싫은 튀어나온 부분을 없애려고 손으로 꽉 쥐어짜면 어떻게 될까요? 풍선 전체가 작아질까요? 아닙니다. 손으로 누르는 순간 내부 공기압이 올라가면서, 손가락 사이나 반대편의 약한 부위가 부풀어 오릅니다. 풍선의 전체 부피는 그대로인 채 말이지요.
문제의 '증상'만 억제하려는 정책은 풍선을 손으로 누르는 것과 같습니다. 단기적으로는 그 부위가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시스템 내부의 보상 피드백(공기압)이 반대편에서 즉시 가동되어 연쇄적인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② 손으로 컵 잡기 비유 : 왜 우리는 자꾸 착각할까?
그렇다면 인간은 왜 자꾸 이런 헛수고를 반복할까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대부분의 경험은 '책상 위에 놓인 컵을 손으로 잡는 일'처럼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 컵과 내 손 사이의 거리를 본다 (격차 인식)
- 손을 뻗는다 (단순 행동)
- 컵을 잡는다 (목표 달성)
우리는 평생 원인과 결과가 1대 1로 직결되고 반응이 즉각 나타나는 단순한 경험 속에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복잡한 사회 문제나 조직 문제에 대할 때도 마치 '움직이지 않는 컵'을 잡듯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도로가 막히네? 도로를 더 깔면 되지!" "인허가가 늦어지네? 절차를 강제로 줄이면 되지!"
하지만 우리가 상대하는 현실의 시스템은 가만히 있는 '컵'이 아닙니다. 내가 손을 뻗는 순간, 시스템 속 수많은 사람들과 요소들이 각자의 목표를 위해 반대 방향으로 반응하며 내 손을 밀쳐냅니다.
4. 도로 확장 딜레마 : 증상 처방이 불러온 비극
이제 오늘의 메인 요리인 '도로 확장 딜레마(Traffic Congestion Paradox)'로 돌아와 봅시다(Sterman 2000: 177-190).
정부와 도시계획가들은 도로가 막힐 때마다 '손으로 컵을 잡듯'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 문제: 출퇴근길 도로 정체로 인한 시간 손실
- 해법: 도로 신설 및 차선 확장 (공급 확대)
도로를 넓히면 처음 몇 달 동안은 차가 안 막히고 원활하게 빠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드디어 문제가 해결됐다!"며 모두가 기뻐합니다.
하지만 이는 시스템이 숨죽이고 있는 단기적 착시일 뿐입니다. 도로가 넓어졌다는 신호가 시스템 내부에 전달되는 순간,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던 수많은 보상 피드백(유발 수요, 운송 수단 변경, 공간 확산 등)이 소리 없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자, 그렇다면 시스템 내부에서는 과연 어떤 피드백 루프들이 작동하길래, 그 비싼 돈을 들여 넓혀 놓은 도로를 결국 이전보다 더 심한 주차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걸까요? 이제 아래의 인과순환지도(Causal Loop Diagram, CLD)를 통해, 도로 밑에 숨겨진 시스템의 정밀한 피드백 지도를 하나씩 펼쳐보겠습니다.
5. 인과순환지도(CLD)로 풀어보는 도로 확장의 딜레마 (Step-by-Step)
앞서 살펴본 '보상 피드백(Compensating Feedback)
'이 실제로 도로 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존 스터만 교수의 모델(Sterman 2000: 177-190)을 바탕으로 구성한 인과순환지도(CLD)를 통해 단계별로 살펴보겠습니다.
'이 실제로 도로 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존 스터만 교수의 모델(Sterman 2000: 177-190)을 바탕으로 구성한 인과순환지도(CLD)를 통해 단계별로 살펴보겠습니다.
[1단계] 도로 확장의 출발과 단기적 보상 피드백 (B1 ~ B4)
도시계획가들의 원래 의도는 단순했습니다. 하지만 도로가 넓어지자마자 세 가지 단기 보상 피드백이 동시에 가동합니다.
출퇴근 주행 시간이 늘어나 사용자의 주행 시간과의 격차가 벌어지면, 교통체증을 줄이려는 압력이 커집니다.
- 정부는 이에 대응해 도로 건설을 추진하고 고속도로 용량을 늘립니다. 용량이 늘어나면 단기적으로 주행 시간이 줄어듭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대했던 기본 음(-)의 피드백 제어 루프입니다.
- 그러나 시스템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B2: 재량 통행량 효과 (Discretionary Trips)
- 주행 시간이 줄어들면 운전 매력도가 높아집니다.
- 운전이 편해지면 그동안 차가 막혀 미루거나 포기했던 쇼핑, 여가, 드라이브 등 하루 평균 운전 빈도(재량 통행)가 늘어납니다.
- 이는 도로 위의 총 운행 차량 수를 늘려 주행 시간을 줄여 왔던 것을 다시 늘려 놓는 첫 번째 상쇄 작용을 일으킵니다.
B3: 주행거리 추가 발생 효과 (Extra Miles)
- 운전 매력도가 상승하면 사람들은 집 근처 가게 대신 멀리 있는 대형 마트로 가거나 우회 도로를 이용해 평균 운행 거리를 늘립니다.
- 먼 거리를 달리는 차들이 늘어나면서 총 운행 차량(총 주행거리)이 증가하고, 주행 시간은 다시 증가합니다.
B4: 대중교통 전환 효과 (Take the Bus / Mode Shift)
- 운전 매력도가 올라가면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승용차로 갈아타면서 대중교통 이용률이 떨어집니다.
- 이는 인당 차량 수와 해당 지역의 차량 수를 늘려 도로 위 총 운행 차량 수를 폭증시키고, 결국 정체를 원점으로 돌려놓습니다.
[2단계] 도시 공간의 팽창과 장기적 교외화 (B5, R1)
단기적인 통행 행태의 변화를 넘어, 시간이 흐르면 도시의 '공간 구조' 자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합니다.
B5: 교외 이주 효과 (Move to the Burbs)
- 주행 시간이 단기적으로 줄어들면, 동일한 목표/허용 주행 시간 내에 도달할 수 있는 목표 주행 시간으로 도달 가능 지역 범위(공간적 접근성)가 외곽으로 크게 확장됩니다.
- 도심의 비싼 집값을 피해 인구가 외곽으로 이주하면서 해당 지역의 인구와 경제활동 수준, 그리고 차량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합니다.
- 결과적으로 장기적으로 총 운행 차량이 늘어나 도로를 다시 주차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R1: 배후지 확장 효과 (Open the Hinterlands - 강화루프)
- 도달 가능 지역 범위가 넓어지면 외곽 배후지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인구가 유입됩니다.
- 유입된 인구는 다시 해당 지역의 차량 수를 늘리고 교통체증을 줄이려는 압력을 다시 일으켜, 또 다른 도로 건설을 부르는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를 만들어냅니다.
[3단계] 대중교통의 붕괴와 '고사 사슬(Death Spiral)' (R2, R3, B6~B8)
자가용 위주의 도로 확충은 대중교통 시스템의 재정 기반을 무너뜨리며 치명적인 악순환을 유발합니다.
R2: 노선 축소 악순환 논리 (Route Contraction Death Spiral)
- 승용차로의 수단 전환으로 대중교통 이용률이 떨어지면 대중교통의 매출 수준이 감소하고 대중교통의 적자 수준이 누적됩니다.
- 적자에 시달린 운수 당국이 대중교통망 운영 수준(노선 및 배차)을 줄이면, 대중교통 서비스의 적정 수준 (Adequacy)이 떨어집니다.
- 이는 운전 매력도를 상대적으로 더욱 높여 대중교통 이용률을 추가로 떨어뜨리는 비극적인 고사 사슬을 형성합니다.
R3: 요금 인상 악순환 논리 (Fare Hike Death Spiral)
- 대중교통의 적자 수준을 메우기 위해 대중교통 요금을 인상하면, 승용차 대비 대중교통의 경제적 매력도가 떨어져 운전 매력도가 상승하고 승객 이탈이 더욱 가속화됩니다.
B6 / B7 / B8: 재정 지원 및 조정 시도의 한계
- 적자에 대응해 비용절감 논리(B6)나 요금 인상 논리(B7), 정부 재정 투자 논리(B8)를 동원하여 대중교통 운영비를 보전하려 애쓰지만, 승용차 중심으로 기울어진 피드백 구조 속에서는 임시방편에 그치게 됩니다.
[4단계] 시스템 병리의 완성: "버스로는 갈 수 없는 도시" (R4)
R4: 버스로 갈 수 없는 도시 (You Can't Get There on the Bus)
- 도달 가능 지역 범위가 저밀도로 무한히 교외화되면, 기존의 대중교통망 운영 수준으로는 넓어진 도시 전체의 접근성을 커버할 수 없게 됩니다 (대중교통 서비스의 적정 수준 (Adequacy) 급락).
- 결국 "버스로는 도저히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도시"가 되어, 시민들은 자가용 보유를 강제당합니다 (인당 차량 수 및 총 운행 차량 폭증).
- 도시는 자가용 없이는 마비되는 도로 의존형 구조에 영구히 고착(lock-in)되고 맙니다.
6. 결론: 증상 처방을 넘어 구조적 스위치를 전환하라
도로가 막힌다고 도로를 넓히는 것은, 풍선의 한쪽이 튀어나왔다고 손으로 꽉 쥐어짜는 '증상 처방'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단선적 개입은 시스템 내부의 5가지 보상 피드백(B2~B5, R1)을 자극하여 도로를 다시 정체시킬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 시스템을 고사시키고(R2, R3) 자가용 없이는 살 수 없는 무분별한 도시 확산(R4)이라는 참담한 '정책 저항'을 불러옵니다.
복잡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눈앞의 증상을 억누르려 하지 말고, 시스템의 내부 구조를 바라보는 통찰이 필요합니다.
- 도로 공급을 늘릴 것이 아니라 혼잡통행료나 노드 가격제를 통해 도로 사용의 내부 비용을 정당화하고,
- 대중교통의 서비스 적정성(Adequacy)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며,
- 토지 이용과 교통 계획을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근본적인 시스템 스위치를 전환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과 조직에서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노력할수록 문제가 꼬인다면, 지금 내가 '풍선을 쥐어짜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시스템의 보상 피드백을 한 발짝 물러서 돌아봐야 합니다.
Ref.
Sterman, John D. (2000). BUSINESS DYNAMICS Systems Thinking and Modeling for a Complex World. McGraw-Hill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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