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shery Game과 내쉬 균형

🎣 Fishery Game과 내쉬 균형

"구조는 전략의 맥락을 규정한다"

Fishery Ltd. Game(이하 피셔리 게임)을 해 보면, 누구도 악의를 품지 않았는데도 어장(공유 자원)은 고갈됩니다. 참가자들은 각자 합리적인 결정을 했지만, 결과는 공멸이었죠.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모든 팀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 전략을 세웠는데… 결과는 참담한 자원 고갈.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전략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가 행동을 만들어낸다'는 시스템사고의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전에 잠시, 게임 이론의 대표 개념인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을 통해 현상을 짚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 모두가 합리적인데 왜 모두가 실패할까?

이런 결과는 게임 이론의 내쉬 균형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내 전략을 바꿔봐야 손해이고, 남도 마찬가지인 상태


→ 이것이 바로 '내쉬 균형'입니다.


쉽게 말해,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는 더 이상 전략을 바꿀 유인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때의 전략 조합이 바로 **'균형'**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 모두가 최선을 선택했는데도 결과가 최악일 수 있는 구조. 

✔ 그게 바로 죄수의 딜레마이고, 바로 Fishery Game에서 우리가 겪은 상황입니다.


이 개념은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수학자 존 내쉬(John Forbes Nash, Jr., 1928~2015)가 제안한 것입니다. 그는 영화 A Beautiful Mind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지요.

🔐 죄수의 딜레마로 이해하는 내쉬 균형.

죄수의 딜레마는 두 사람이 협력하면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음에도, 서로를 믿지 못해 배신을 선택하는 고전적인 게임 이론 시나리오입니다.



→ 내쉬 균형은 'A 배신, B 배신'입니다. 아무도 전략을 바꿔 봤자 더 나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 피셔리 게임에서의 내쉬 균형.

Fishery Game에서도 이와 유사한 구조가 작동합니다.



여기서 내쉬 균형은 모두가 탐욕 전략을 선택하는 경우입니다.

  • "다른 팀이 절제한다면, 우리가 탐욕을 부리는 게 이득"

  • "다른 팀이 탐욕을 부린다면, 우리도 탐욕을 부려야 덜 손해"


이러한 '합리적' 판단이 모든 팀에서 동시에 일어나면서, 결국 자원 고갈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집니다.

📌 내쉬 균형의 핵심.

  • 전제 조건: 모두가 다른 사람의 전략을 알고 있고, 각자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완전 합리성).

  • 결과 조건: 누구든지 자신의 전략을 바꾸더라도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 핵심 통찰: 합리적인 개인 선택비합리적인 집단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 시스템다이내믹스(SD)는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Nash 균형은 '평형 상태'를 분석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SD가 Nash를 '대체'하거나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두 접근은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합니다.


  • Nash 균형은 묻습니다. "어떤 전략 조합이 균형인가?"

  • SD는 묻습니다. "그 균형에 어떻게 이르는가? 왜 플레이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행동하는가? 그리고 그 구조는 어떻게 재설계할 수 있는가?"


Nash 균형은 평형점(point)을 찾고, SD는 궤적(trajectory)을 추적합니다. 두 관점은 경쟁하지 않고 보완합니다.


물론 게임 이론도 반복 게임(repeated games), 진화적 안정전략(Evolutionary Stable Strategy), 미분 게임(differential games)처럼 시간을 다루는 확장을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로버트 액설로드(Robert Axelrod)의 『협력의 진화(The Evolution of Cooperation)』(원저 1984, 번역 2009)가 대표적입니다. 그러므로 "Nash는 정태적, SD는 동태적"이라고 단순 이분법으로 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SD가 이 주제에 고유하게 기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세 가지를 짚을 수 있습니다.

1) 완전 합리성이 아니라 제한된 합리성

Nash 균형은 완전 합리성(perfect rationality)을 전제합니다. 모든 플레이어가 타인의 전략을 알고, 자신의 보수함수를 완벽히 계산하며, 최적 반응을 선택한다고 가정합니다.


SD는 이 가정을 내려놓습니다. Sterman이 Business Dynamics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듯, 현실의 의사결정자는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속에서 행동합니다. 정보는 지연되고, 인식은 부분적이며, 사람들은 완벽한 계산이 아니라 경험적 의사결정 규칙(heuristics)에 따라 판단합니다.

2) 지연(delay)과 저량(stock)의 축적.

피셔리 게임이 '어느 순간 갑자기' 붕괴하는 듯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Nash 균형 개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어족 자원은 저량(stock)입니다. 그 저량은 재생률이라는 유량(flow)에 의해 보충되고, 어획량이라는 유량에 의해 소진됩니다. 재생률은 저량의 크기에 비선형적으로 의존합니다(로지스틱 성장). 어획량이 재생률을 넘어서면 저량이 서서히 줄고, 저량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재생률도 함께 무너져 붕괴는 가속됩니다.


문제는 참가자들이 이 저량-유량 구조와 지연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어획량은 눈에 보이지만, 재생 역학(Regeneration Dynamics)은 보이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아직 괜찮아 보이는' 순간에 이미 시스템은 회복 불가능한 경로로 들어서 있을 수 있습니다.

3) 학습과 구조 재설계.

Nash 균형은 게임의 규칙과 보수 구조를 외생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다룹니다. SD는 다릅니다. 구조 자체를 내생 변수로 다루려 합니다.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참가자들이 구조를 인식하고, 규칙을 바꾸고, 새로운 피드백 메커니즘을 설계해 넣을 때, 게임 자체가 달라집니다. 이것이 SD가 '구조 설계자'의 관점을 권하는 이유입니다.

🔁 구조는 전략의 맥락을 규정한다.

시스템다이내믹스에는 잘 알려진 명제가 있습니다.


"Structure produces behavior."


구조가 플레이어의 행동 패턴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이 명제를 "구조가 전략을 이긴다"로 과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구조는 전략의 상대가 아닙니다. 구조는 전략의 맥락입니다.


피셔리 게임에서 참가자들이 '탐욕'을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 판단 합리적으로 일 수 있도록 한 구조적 조건들입니다. 정보의 비대칭, 신뢰 유인의 부재, 저량-유량 관계에 대한 인식 부족, 어족 재생의 지연. 이러한 구조 조건을 그대로 둔 채 "플레이어가 더 현명해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허합니다.


즉, 합리적 전략 선택조차 구조의 산물입니다. 이 지점이 게임 이론에 더해 SD가 제공하는 본질적인 관점입니다.


🎭 자크 라캉의 '강요된 선택'과 피셔리 게임

제가 피셔리 게임 뒤 디브리핑에서 자주 꺼내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강요된 선택(forced choice, choix forcé)'입니다. 라캉이 『세미나 11』(1964)에서 든 예시는 강도가 칼을 들이대며 외치는 바로 그 문장입니다.


"돈이냐, 목숨이냐!"


이 상황에서 우리는 당연히 목숨을 택합니다. 그러나 라캉은 이 '선택'의 구조를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 목숨을 택하면, 돈은 잃습니다.

  • 돈을 택하면, 목숨도 잃습니다 — 그리고 돈도 잃습니다.


어느 쪽을 택해도 '잃는' 것이 이 선택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지점이 있습니다. 선택이 강요되는 그 순간, 우리는 강도의 범죄 사실 자체를 문제 삼지 못합니다. "왜 이 사람이 나에게 이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가?", "이 두 선택지 말고 다른 길은 없는가?" — 이런 질문 자체로 물러나는 능력이 봉쇄됩니다.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 한 발 물러나 질문 자체를 바라보는 메타적 시선을 잃는 것입니다.

피셔리 게임의 강요된 선택

피셔리 게임에서도 똑같은 구조가 작동합니다. 참가자들에게는 '탐욕이냐 절제냐'라는 이분법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 이분법 안에서 Nash 균형은 '탐욕'을 합리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 발 물러나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이 이분법은 누가 설계했습니까?


  • 왜 어획 할당량을 참가자들끼리 합의할 수 없는가?

  • 왜 어족 자원의 상태는 실시간으로 공유되지 않는가?

  • 왜 다른 팀과의 소통은 막혀 있는가?


그리고 이 모든 질문보다 더 깊은 곳에서, 하나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왜 우리는 물고기를 잡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게임의 규칙을 묻는 것이 아니라, 게임에 참여하는 동기 자체를 묻습니다. 왜 우리는 더 많이 가지려 하는가? 왜 ‘성장’은 의심되지 않는 전제로 작동하는가? 유한한 자원의 시스템에서 끝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한 붕괴는 피할 수 없다는 것 — 이것이 포레스터의 World Dynamics(1971)와 메도우즈 연구진의 The Limits to Growth(1972) 이래 시스템다이내믹스가 반세기 넘게 일관되게 전해온 메시지입니다. 도넬라 메도우즈가 정리한 '시스템 개입 지점(leverage points)'의 위계에서도, 규칙(rules)을 바꾸는 것보다 목표(goals)를 의심하는 것이, 그리고 목표보다 그 목표를 낳은 패러다임(paradigm) 자체를 의심하는 것이 훨씬 큰 지렛대 효과를 냅니다. "왜 물고기를 잡아야 하는가?" 바로 이 패러다임 층위의 질문입니다.


따라서 강요된 선택의 가장 깊은 바깥은 '규칙을 바꾸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장을 당연시하는 멘탈 모델 자체를 의심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이 질문들은 게임 '안'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강도 앞에서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예요?"라고 묻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게임의 '강요된 선택'은 그 프레임을 의심할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10년 차까지 진행되도록 설계된 게임이 대부분 그보다 훨씬 일찍 공멸로 끝나버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참가자들이 '잡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 안에서 사고하는 동안, 애초에 '왜 잡아야 하는가'를 물을 여유는 주어지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를 더 덧붙이고 싶습니다. 라캉이 강조한 "질문 자체로 물러나지 못함"을 시스템사고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강요된 선택의 프레임은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구조이다. 강도 상황에서는 강도가 그 프레임을 만들었습니다. 피셔리 게임에서는 게임의 규칙, 정보 구조, 소통 채널을 설계한 사람이 그 프레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현실의 공유자원 문제에서는 제도와 관행이 그 프레임을 만들었습니다.


프레임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설계'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그 프레임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자리로 옮겨 갑니다.

Nash는 강요된 선택 안에서, SD는 강요된 선택 바깥에서.

여기서 Nash와 SD의 차이가 다시 한 번 선명해집니다.


  • Nash 균형 분석은 강요된 선택의 에 서 있습니다. 주어진 이분법(탐욕/절제) 안에서 최적 반응을 계산합니다. 프레임은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 SD의 구조 사고는 강요된 선택의 바깥으로 한 발 물러섭니다. "이 선택지를 만든 구조는 무엇인가? 그 구조는 어떻게 다시 설계할 수 있을까?"를 묻습니다.


'구조 설계자'가 된다는 것은, 라캉의 언어로 말하자면 강요된 선택의 프레임 자체를 의심할 수 있는 위치에 서는 것입니다. "돈이냐 목숨이냐"의 선택 앞에서 "이 상황 자체가 범죄"라고 인식하는 순간, 이미 선택의 구조는 흔들립니다. 마찬가지로, "탐욕이냐 절제냐"의 선택 앞에서 "이 게임의 규칙은 누가 짰는가"라고 묻는 순간, 우리는 이미 플레이어에서 설계자로 자리를 옮기고 있는 것입니다.

💼 기업 전략의 문맥에서 생각해 보기.

경쟁 전략의 세계에서도 피셔리 게임은 반복됩니다.


  • 한정된 자원: 인재, 시장 점유율, 부동산 투기

  • 반복되는 경쟁: 가격 인하, 출혈 경쟁, AI 인재 쟁탈

  • 결과: 모두가 지치고, 산업 생태계가 파괴됨


이런 상황은 내쉬 균형의 기업판 죄수의 딜레마입니다.

🌱 CSV와 ESG는 구조를 재설계하려는 시도.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요?


CSV(Creating Shared Value)나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는 이러한 관점에서 중요합니다. 이들은 기존에 통제할 수 없는 외생 변수로 치부했던 요소들을 내생 변수로 관리하겠다는 시도입니다. 즉, 구조를 재설계하는 작업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전환이 쉽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경쟁 심리에 너무 매몰되어 구조를 함께 바꾸는 정신 모델(mental model)을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다시 피셔리 게임으로 돌아가서…

피셔리 게임 이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구조적 사고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 "이 구조에서는 아무도 전략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구조라면 협력적 전략이 내쉬 균형이 될 수 있을까요?"
  • "그 구조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건 제도인가, 신뢰인가, 정보 공유인가?"
  • "상대보다 빨리 고기를 잡자는 생각에서, 어떻게 하면 고기가 계속 자라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전환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할 때, 우리는 전략가를 넘어서 구조 설계자(structure designer)가 됩니다.


실제 공유지의 비극 문제를 극복한 사례는 많습니다.


  • MSC(Marine Stewardship Council, 해양관리협의회) 인증 어업

  •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의 실증 연구 사례


특히 오스트롬이 Governing the Commons(1990)에서 밝힌 공유자원 관리의 8가지 설계 원칙은 눈여겨보시고 기업 맞춤형으로 고민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원칙들은 본질적으로 공유자원 시스템에 피드백 메커니즘을 내생화하는 설계라는 점에서, 앞서 말씀드린 "구조의 내생적 재설계"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1. 명확한 경계 설정 (누가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지)

  2. 현지 조건에 맞는 규칙 수립

  3. 규칙 수립에 모든 이해관계자 참여

  4. 효과적인 모니터링 시스템

  5. 단계적 제재 조치

  6. 갈등 해결 메커니즘

  7. 자원 관리에 대한 최소한의 외부 간섭

  8. 중첩된 거버넌스 구조 (larger, nested enterprises)

🧠 마무리하며

피셔리 게임은 단지 환경 교육 도구가 아닙니다.


내쉬 균형이 보여 주는 평형의 함정과 시스템다이내믹스가 제안하는 구조 재설계의 가능성을 함께 사유하게 만드는 깊은 시뮬레이션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이것입니다.


"우리 기업만의 전략을 잘 세우는 것보다, 전략의 맥락을 만들어내는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것."


그래서


"모두가 전략가가 되려는 시대, 진짜 필요한 건 구조 설계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게임을 하지만, 누군가는 게임의 규칙을 디자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부록: 자크 라캉 『세미나 11』의 '강요된 선택' 원문 — 연구자를 위한 주석

본문에서 언급한 라캉의 '강요된 선택(choix forcé)' 개념은 『세미나 11: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Le Séminaire, livre XI: Les quatre concepts fondamentaux de la psychanalyse)의 제16장 「주체와 타자: 소외(Le sujet et l'Autre : l'aliénation)」에서 집중적으로 전개됩니다. 이 세미나는 1964년 1월부터 6월까지 파리 고등사범학교(École normale supérieure)에서 진행된 강의이며, 제자인 자크-알랭 밀레(Jacques-Alain Miller)의 편집을 거쳐 1973년 쇠유(Seuil)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원문 (프랑스어)

« La bourse ou la vie ! Si je choisis la bourse, je perds les deux. Si je choisis la vie, j'ai la vie sans la bourse, soit une vie écornée. »


― Jacques Lacan, Le Séminaire, livre XI : Les quatre concepts fondamentaux de la psychanalyse, texte établi par Jacques-Alain Miller, Paris: Seuil, 1973, 제16장 「L'aliénation」(1964년 5월 27일 강의).

영어 번역 (Alan Sheridan 역)

"Your money or your life! If I choose the money, I lose both. If I choose life, I have life without the money, namely, a life deprived of something."


― Jacques Lacan, The Four Fundamental Concepts of Psycho-Analysis, trans. Alan Sheridan, ed. Jacques-Alain Miller, New York: W. W. Norton, 1977(원서 1973), Chapter XVI "The Subject and the Other: Alienation."


(정확한 페이지 표기는 독자가 소장하신 판본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인용 시 직접 대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문판 Norton 1977 페이퍼백에서는 대체로 제16장 초반부에 위치합니다.)

한국어 시역(試譯)

"돈이냐 목숨이냐! 내가 돈을 고르면, 나는 둘 다 잃는다. 내가 목숨을 고르면, 나는 돈 없는 목숨, 곧 결손된 삶을 얻을 뿐이다."


프랑스어 'écornée'는 원래 책 모서리가 접혀 떨어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일부가 잘려 나간', '온전하지 못한'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라캉이 이 단어를 고른 것은 목숨을 택하는 쪽조차 '온전한 선택'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해설: '소외의 vel(vel d'aliénation)'

라캉은 이 강도 장면을 통해 **'소외의 vel'**이라는 구조를 도입합니다. 라틴어 'vel'은 '혹은(or)'을 뜻하되, 고전 논리학의 포괄적 논리합(inclusive or)도 배타적 논리합(exclusive or)도 아닌, 라캉이 독자적으로 규정한 제3의 논리합입니다. 이 구조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1) 선택의 비대칭성


두 선택지는 겉으로는 대등해 보이지만 실은 비대칭적입니다. 돈을 택하면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으면 돈도 잃습니다. 따라서 '합리적' 선택은 단 하나(목숨)로 수렴하지만, 그 하나의 선택조차 다른 쪽(돈)의 상실을 동반합니다. 어느 쪽을 택해도 '잃는다'는 점에서 이는 순수한 선택이 아니라 상실을 분배하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2) 프레임의 불가시성


선택이 강요되는 그 순간, 주체는 '이 선택 자체가 정당한가?'를 묻지 못합니다. 강도의 범죄성은 선택의 구조 바깥에 있고, 선택 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라캉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보이지 않음'의 구조적 성격입니다. 선택은 주체를 프레임 안에 가둠으로써 성립합니다.


(3) 주체화의 계기


라캉에게 이 '강요된 선택'은 강도 상황의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주체가 상징계(언어의 질서)에 진입할 때 겪는 근본 구조의 예시입니다. 인간은 언어를 얻는 대가로 '직접적 존재'의 일부를 잃습니다(라캉은 이를 'aphanisis', 곧 주체의 사라짐이라 부릅니다). 언어를 거부하면 사회적 존재가 되지 못하고, 언어를 택하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을 잃게 됩니다. 이 근본적 상실이 역설적으로 주체를 만들어냅니다.

시스템사고 연구자를 위한 함의.

이 개념이 시스템다이내믹스·시스템사고 연구에 갖는 의미는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경계 설정의 철학적 책임. 시스템사고에서 '경계 설정(boundary setting)'은 가치 중립적인 기술적 작업이 아니라 철학적 판단입니다. 라캉은 왜 주체가 주어진 프레임을 의심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심리적·구조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모델링에서 경계를 설정하는 작업은 동시에 '무엇을 강요된 선택으로 고착시키고, 무엇을 질문 가능한 것으로 열어둘 것인가'를 결정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둘째, 설계자 관점의 당위. 강요된 선택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설계'라면, 우리는 다시 설계할 수 있습니다. SD가 구조를 외생 조건이 아니라 내생 변수로 다루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구조 설계자의 위치란, 라캉의 언어로 말하자면 '소외의 vel' 바깥에 서서 vel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위치입니다.


셋째, 오스트롬과의 연결. 엘리너 오스트롬의 8원칙은 공유자원 문제에서 강요된 선택의 프레임을 해체하고 새 프레임을 설계하는 구체적 방법론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제3원칙(규칙 수립에 모든 이해관계자 참여)과 제6원칙(갈등 해결 메커니즘)은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의 최적화"가 아니라 "선택지의 프레임 자체를 참여자들이 함께 짜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라캉–SD 연결의 핵심을 구현합니다.

관련 자료

  • Jacques Lacan, Le Séminaire, livre XI: Les quatre concepts fondamentaux de la psychanalyse, texte établi par Jacques-Alain Miller, Paris: Seuil, 1973.

  • Jacques Lacan, The Four Fundamental Concepts of Psycho-Analysis, trans. Alan Sheridan, ed. Jacques-Alain Miller, New York: W. W. Norton, 1977/1998.

  • Slavoj Žižek,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London: Verso, 1989 — 제5장에서 강요된 선택의 이데올로기적 작동을 분석.

  • Bruce Fink, The Lacanian Subject: Between Language and Jouissance,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5 — 소외의 vel 개념을 명료하게 해설하는 표준 입문서.

  • 자크 라캉, 『세미나 11: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맹정현·이수련 옮김, 새물결, 2008 — 한국어 판본.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경연제도와 시스템사고: 세종대왕의 조세제도 개혁에서 배우는 구조적 경청의 리더십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지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개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