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을 이기는 시스템사고 (1) — 태도와 전략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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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시스템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종종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거대한 물결 앞에 선 작은 배처럼, 시스템의 힘은 때로 너무나 강력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무력감은 가장 위험한 태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어차피 난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맞는 말입니다. 시스템은 크고, 우리는 작습니다. 그래서 시스템은 종종 개인을 압도하는 힘으로 다가옵니다. 마치 거대한 물결 앞에 선 작은 배처럼, 인간은 종종 무기력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시스템사고는 단지 “구조를 보라”는 통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신도 그 구조의 일부”라는 불편한 진실을 함께 제시합니다. 다시 말해, 구조는 우리를 만들지만, 우리 역시 구조를 구성합니다.
오늘은 이 무기력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는 시스템사고의 전략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시스템은 가치 중립, 태도는 선택
우선 하나의 대전제를 세워봅시다.
시스템은 가치 중립적이다. 그러나 태도는 절대 중립일 수 없다.
이 통찰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의 다음 말과도 닿아 있습니다.
“시련을 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어도, 그 시련에 대한 태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p.233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또 다른 딜레마가 생깁니다. 시스템은 그대로인데, 태도만 바꾸라고 말하면 결국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1964년 줄리안 로터(Julian Rotter)가 제시해서 환경 교육의 근간이 된 내적 조절점(Internal locus of control)의 한계와 연결됩니다. 내적 조절점 또는 내적 통제라는 개념에 따르면 자신의 행동과 노력이 결과를 결정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계층 구조의 벽, 경제 양극화의 벽등은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이 안 되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시스템사고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태도를 넘어선 전략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스템 변화의 세 가지 차원, 즉 멘탈 모델, 구조, 태도를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시스템 변화의 세 가지 차원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데는 세 가지 차원의 접근이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멘탈 모델(Mental Model)의 변화이고, 그 다음으로는 구조의 변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상 대응(태도)입니다.
1. 멘탈 모델: 가장 근본적이지만 가장 어려운 변화
멘탈 모델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인식 틀입니다. 보통 멘탈 모델을 우리의 가치관, 신념 체계, 세계관을 포함한다고 합니다. 저는 간단하게 '당연히 여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멘탈 모델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지만, 동시에 가장 어려운 과정이기도 합니다.
멘탈 모델을 바꾸는 것은 사유 활동 전반에서 전면전을 치러야 할 정도로 매우 어렵고 지난한 과정입니다.
자본주의적 성장 모델에서 순환경제로의 전환, 경쟁 중심에서 협력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같은 변화는 멘탈 모델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경쟁이 ‘당연한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하면, 협력은 늘 비효율로 간주될 것입니다. 반면, 상호의존을 당연시하면 경쟁은 자원의 낭비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태도 변화를 넘어 철학적, 존재론적 변화를 요구합니다. 다른 글에서 이 내용을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멘탈 모델의 변화가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이지만, 사유의 전분야에서 전면전을 벌여야 할 정도로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전략으로 구조적 접근, 즉 피드백의 힘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2. 피드백의 힘을 이해하기
시스템사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피드백(Feedback)입니다. 피드백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강화 피드백(Reinforcing Feedback)과 균형 피드백(Balancing Feedback).
1) 강화 피드백: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강화 피드백은 작은 변화가 점점 증폭되어 큰 변화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눈덩이가 굴러가며 점점 커지는 것과 같은 원리죠.
예를 들어, 첫날 1개가 매일 2배씩 증가하는 구조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30일째 되는 날에는 그 수가 무려 5억 3천만 개가 됩니다. 이것이 지수 증가의 놀라운 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엄청난 최종 결과에 비해 과정의 대부분은 미미한 변화로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30일 동안의 과정에서, 최종 값의 50%를 넘어서는 시점은 29일째입니다! 전체 기간의 96.67%가 지난 시점이죠. 이 대목을 주목하셔야 합니다. 분명 위 사례는 매일 두 배가 되어 30일이 되면 5억 개가 넘는 가상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미약하나마 뭔가 조금이라도 강화 또는 증폭하는 피드백 조건이 있다고 새롭게 가정해 봅시다. 얼마든지 우리 주위에서 현실적인 사례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최종 단계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시스템은 가치 중립적입니다. 따라서, 강화 피드백의 결과는 관점에 따라 천당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에게는 그 최종 단계가 꿈 같은 목표 또는 비전일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상황에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압도하는 수준,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종말•막장일 수 있습니다. 그런 최종 단계 직전 시기라고 할 수 있는 96.67% 싯점에서는 최종 수준의 50% 수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물론 시스템은 가치 중립적이기 때문에 이 급격한 변화는 희망일 수 있고 악몽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강화 피드백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 강화 피드백 구조: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무언가를 시작(노력, input)하고, 그 결과, 눈에 띄지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성과가 나옵니다. 이제 그 성과 덕분에 동기부여되어 더 노력(input)하게 된다는 구조입니다.
- 오래 끌기: 초기에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더라도, 오랫동안 강화 피드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강화 피드백을 찾고 만들기 위한 첫 단계는 자신과 주변의 잠재력을 믿는 것입니다.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은 우리 모두에게 고유한 재능과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리고 조직이나 공동체 차원에서는 협동조합의 역사와 사례를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함께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증거가 수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강화 피드백을 유지하는 두 번째 전략은 '지치지 않는 지속성'입니다. 외부의 간섭이나 내부의 저항에 굴하지 않으려면, 이 과정이 '놀이'처럼 느껴져야 합니다. 흥이 계속 유지되어야 합니다. 지치면 안 됩니다. 우리 민족이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비결은 아마도 이 '흥'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강화 루프’를 찾고
- 놀이처럼 지속하는 환경을 만들 것
2) 균형 피드백: 지연과 인내의 지혜
균형 피드백은 목표와 현실의 차이를 좁혀나가는 구조입니다. 이 전략을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단계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 단계: 차이 인식하기
- 뭘 원하시나요(목표 수준 인식)? 욕망, 가치 체계가 반영됩니다.
- 지금 어떤가요(현실 수준 인식)? 현실 인식 능력입니다.
이 두 가지를 인식하는 순간, 그 차이(gap)가 명확해지고 이것이 해결해야 할 문제, 의사결정의 대상이 됩니다.
두 번째 단계: 지연 현상 이해하기 문제는 우리가 노력해도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연(delay)' 현상입니다.
이 지연 현상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 무기력에 빠져 포기하기
- 목표를 낮추려고 타협하기
그러나 목표와 타협하지 않으려 할 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바로 '과도한 교정 행동(overshoot)'으로 인한 파동입니다. 돼지 파동, 양파 파동, 주택 파동 등에서 볼 수 있는 공급-수요의 비대칭적 균형 조절과 같은 현상이죠. 이 현상은 복잡하기 때문에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지연 현상을 제대로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아무리 노력해도 바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차분히 다음 전략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목표에 대한 가치 판단과 현실 수준 인식을 하는 냉철한 이성
- 생각처럼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지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유
무기력을 이기는 실천적 접근
이제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실제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 실천적 접근법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 작게 시작하되, 지속적으로: 아무리 미미한 변화라도 시작하고, 그것이 강화 피드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찾아보세요.
- 장기적 관점 유지하기: 당장의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지수 성장의 특성을 이해하고 긴 호흡을 유지하세요.
- 즐겁게 지속하기: 변화를 위한 노력이 고통스러운 의무가 아닌,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세요.
- 목표와 현실 사이의 간극 명확히 하기: 모호함은 행동의 방향성을 흐리게 합니다. 구체적인 목표와 현실 상태를 명확히 인식하세요.
- 지연 현상 이해하기: 노력과 결과 사이에는 시간 차이가 있음을 이해하고, 과도한 반응이나 조급함을 경계하세요.
마치며: 태도, 전략, 그리고 멘탈 모델의 통합
결국 무기력을 이기는 시스템사고는 세 가지 차원의 통합적 접근에 있습니다.
- 멘탈 모델의 변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이지만, 사유 체계 전반에 걸친 전면전이 필요한 어려운 과정
- 구조적 전략(피드백 활용):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 중간 단계의 접근법
- 개인의 태도: 시스템 속에서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인 반응
이 세 가지 차원을 균형 있게 고려하지 않으면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태도만 강조하면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결과를 낳고, 전략만 강조하면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접근이 될 수 있으며, 멘탈 모델의 변화만 강조하면 현실적 실천이 부족한 이상론에 그칠 수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말처럼 우리는 태도를 선택할 수 있지만, 동시에 시스템사고의 통찰을 통해 더 효과적인 변화 전략을 모색하고,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근본적인 사고 체계까지 점검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결코 완전히 무력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의 이해는 오히려 우리에게 더 많은 선택지와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지혜는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키며, 그 둘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다."
- 미국 신학자 홀드 니버(Reinhold Niebuhr)“Serenity Prayer” (평온의 기도)에서
하이데거도 비슷한 고민을 한 모양입니다. 그는 고민 끝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던져진 존재이지만,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기획할 수 있다.”
즉, 시스템은 주어진 조건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기획 가능한 존재입니다.
그 기획은 멘탈 모델에서 출발하고, 구조를 바꾸는 전략으로 전개되며, 태도의 선택으로 매 순간 실현됩니다.
시스템은 무기력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시스템사고는 오히려 더 깊은 주체성과 실천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여러분은 어떤 시스템 속에서, 어떤 멘탈 모델을 가지고, 어떤 전략과 태도를 선택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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