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학자가 되려고 하는가?

저는 SD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철학 박사 과정을 통해 철학적 사유를 접하고 있습니다. 박사 과정으로 철학을 시작했다는 것은 학자의 길을 가겠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저에게는 세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철학적 SD 모델러
  • SD를 연구하는 (SD도 연구하는) 철학자
  • 이 둘 사이의 짜임 관계에 머무는 사유자.

"과연 나는 어떤 학자가 되려고 하는가?"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었던 이 질문에 대해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비록 인공지능의 답변이지만, 저에게는 지금 단계에서 소중한 답변이기 때문에 기록을 위해서 전문을 블로그에 등록합니다. 






이 물음은 박사의 학술적 정체성을 결정짓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며, 박사가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고 한 직관은 정확히 옳다. 단순한 명칭 차이가 아니라, 박사가 매일 어떤 글을 쓰는가, 어떤 학회에서 발표하는가, 어떤 비평을 받아들이고 어떤 비평을 거절하는가, 박사의 연구실 책상 위에 어떤 책이 펼쳐져 있는가 — 이 모든 일상의 작동 방식을 결정짓는 물음이다.

세 가지 자리를 가상의 학자 인물로 의인화해 풀어보겠다.

I. 세 인물 — 김철수, 이영희, 박지민

세 사람 모두 박사처럼 시스템 다이내믹스 배경에서 출발하여 아도르노 철학을 만났다고 가정하자. 같은 출발점에서 출발했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곳에 정착했다.

1. 김철수 — "철학적 SD 모델러"

김철수는 공학자이다. 그의 본업은 SD 모델을 만드는 것이고, 철학은 그 모델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한 자원이다. 그의 책상 위에는 스터먼(Sterman)의 Business Dynamics가 늘 펼쳐져 있고, 옆에 아도르노의 책이 한 권 놓여 있다. 그는 아도르노에게서 유용한 통찰을 길어온다.

김철수의 일상:

  • 그가 발표하는 곳은 SD 학회(System Dynamics Society)의 연례 학술대회이다.

  • 그가 쓰는 논문의 형식은 SD 학회지(System Dynamics Review)가 요구하는 형식이다 — 도입·문헌 검토·모델·결과·결론.

  • 그가 받는 비평은 "당신의 모델 방정식이 충분히 검증되었는가?"이다.

  • 그가 아도르노를 인용할 때, 그것은 모델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 그친 한 페이지 분량의 논의 정도이다.

  • 박사의 6장 발제에서 받은 반론을 그가 받았다면, 그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 "흥미로운 지적이지만, SD 학회지의 심사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논의이다."

  • 그가 한국에서 만나는 동료들은 산업공학과·경영학과 교수들이다.

김철수에게 철학은 *도구(Werkzeug)*이다. 도구는 본업을 보조한다. 본업은 모델링이다.

2. 이영희 — "SD를 연구하는 철학자"

이영희는 철학자이다. 그녀의 본업은 비판 이론을 연구하는 것이고, SD는 그녀의 철학적 분석의 대상이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아도르노의 Negative Dialektik과 호르크하이머의 Zur Kritik der instrumentellen Vernunft가 늘 펼쳐져 있고, 옆에 SD 입문서가 한 권 놓여 있다. 그녀는 SD를 현대 도구적 이성의 한 사례로 다룬다.

이영희의 일상:

  • 그녀가 발표하는 곳은 한국사회와철학연구회나 한국현상학회 같은 철학 학회이다.

  • 그녀가 쓰는 논문의 형식은 철학 학회지가 요구하는 형식이다 — 인용은 GS 권수와 쪽수로, 독일어 원전을 직접 인용하며, 각주는 풍부하고 정밀하다.

  • 그녀가 받는 비평은 "당신의 아도르노 해석이 충분히 정밀한가? Hullot-Kentor 영역본만이 아니라 Suhrkamp 원전을 보았는가?"이다.

  • 그녀가 SD를 다룰 때, 그것은 비판 대상이다. 그녀는 SD의 인과순환지도가 도구적 이성의 한 형식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 박사의 6장 발제에서 받은 반론을 그녀가 받았다면, 그녀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 "이 반론은 einebnen의 한 형태이며, 박구용 교수가 비판하는 hermeneutic 평탄화의 사례이다."

  • 그녀가 한국에서 만나는 동료들은 철학과 교수들이다.

이영희에게 SD는 *분석 대상(Gegenstand der Analyse)*이다. 분석은 본업을 구성한다. 본업은 철학이다.

3. 박지민 — "짜임관계에 머무는 사유자"

박지민은 둘 사이에 있다. 그러나 "둘 사이에 있다"는 표현은 부정확하다. 그것은 마치 어느 쪽도 아닌 어중간한 자리처럼 들린다. 박지민의 자리는 어중간한 것이 아니라, 두 영역의 고유한 위상을 보존하면서 그 사이의 긴장을 자기 사유의 형식 자체로 삼는 자리이다.

박지민의 일상:

  • 그녀가 발표하는 곳은 둘 다이다. SD 학회에서는 SD의 언어로 발표하고, 철학 학회에서는 철학의 언어로 발표한다. 그러나 두 발표 모두에서 그녀는 상대 영역의 존재를 사유의 한 계기로 명시한다.

  • 그녀가 쓰는 논문의 형식은 융합이 아니다. 그녀는 SD 논문에서 SD의 형식을 따르되, 결론부에 "본 모델이 표상하지 못하는 비동일자"라는 항목을 둔다. 철학 논문에서는 철학의 형식을 따르되, 한 절을 할애해 "본 분석이 SD 실천자에게 어떤 작동 가능한 함의를 갖는가"를 다룬다.

  • 그녀가 받는 비평은 두 종류이다. SD 학회에서는 "당신은 너무 철학적이다"라고 비판받고, 철학 학회에서는 "당신은 너무 공학적이다"라고 비판받는다. 그녀는 두 비평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는다 — 두 비평은 각각 자기 영역의 잣대로 그녀의 짜임 관계를 평탄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 박사의 6장 발제에서 받은 반론을 그녀가 받았다면, 그녀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 "이 반론은 두 영역의 위상 차이를 평탄화하고 있다. 나의 작업은 융합이 아니라 짜임관계이다."

  • 그녀가 한국에서 만나는 동료들은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학자들이다. 그녀에게는 늘 외로움이 있다.

박지민에게 두 영역은 짜임관계의 두 별자리이다. 어느 쪽도 본업이 아니다. 본업은 두 별자리 사이의 긴장 자체를 견디는 것이다.

II. 세 사람의 차이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시금석

세 사람의 차이가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으므로, 다음 다섯 가지 *구체적 시금석(Probe)*을 제시한다. 박사가 자신의 자리를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시금석 1 — "당신의 일차 독자는 누구인가?"

  • 김철수의 일차 독자는 SD 학자들이다. 그는 그들이 이해할 언어로 쓴다.

  • 이영희의 일차 독자는 철학자들이다. 그녀는 그들이 이해할 언어로 쓴다.

  • 박지민의 일차 독자는 자기 자신이다. 그녀는 자신이 견뎌야 하는 긴장을 글로 옮기며, 그 글이 어느 쪽 학회에서도 완전히 환영받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시금석 2 — "당신은 인용할 때 어떤 언어를 쓰는가?"

  • 김철수는 인용을 최소화한다. 그의 글은 모델 방정식과 시뮬레이션 결과에 중심을 두고 있다. 아도르노 인용은 영역본 한두 줄이면 충분하다.

  • 이영희는 인용을 극대화한다. 그녀는 GS 7, S. 154와 같은 정밀한 인용을 의무로 한다. 독일어 원전을 직접 인용하고, Konjunktiv II 같은 문법적 디테일을 논의한다.

  • 박지민은 두 형식을 한 글 안에 공존시킨다. 그녀의 한 논문에 모델 방정식과 GS 7 정밀 인용이 함께 등장한다. 이 공존 자체가 그녀의 형식적 입장 표명이다.

시금석 3 — "당신은 누구의 비평을 두려워하는가?"

  • 김철수는 SD학회의 익명 심사자를 두려워한다.

  • 이영희는 박구용 교수의 정밀한 텍스트 독해를 두려워한다.

  • 박지민은 두 쪽 모두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평탄화 유혹이다 — 어느 한쪽으로 도망치고 싶은 유혹.

시금석 4 — "당신의 논문 한 편이 거절당했을 때 당신은 무엇을 수정하는가?"

이것이 가장 결정적인 시금석이다.

  • 김철수의 SD 논문이 "철학적 부분이 너무 추상적이다"라는 이유로 거절되면, 그는 철학적 부분을 줄인다. 본업은 SD이기 때문이다.

  • 이영희의 철학 논문이 "SD에 대한 기술적 설명이 불필요하다"라는 이유로 거절되면, 그녀는 SD 부분을 줄인다. 본업은 철학이기 때문이다.

  • 박지민이 어느 쪽 비평이든 받았을 때, 그녀는 줄이지 않는다. 줄이는 순간 짜임관계는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논문을 다른 곳에 투고한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작업을 받아주는 학술 장(champ)을 스스로 구축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시금석 5 — "5년 후 당신의 책장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 김철수의 책장에는 SD 책이 늘어나고, 아도르노는 한 칸을 차지한다.

  • 이영희의 책장에는 비판이론 책이 늘어나고, SD는 한 칸을 차지한다.

  • 박지민의 책장에는 둘 다 늘어나며, 그 사이에 분류 불가능한 책들이 끼어든다 — 부르디외, 라투르(Bruno Latour),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이저(Wolfgang Iser) 같은 경계 작업의 사상가들이 그녀의 동료가 된다.

III. 박사의 자리에 대한 진단

박사의 user memory와 작업 흐름을 보면, 박사는 이미 박지민의 자리에 가깝다. 몇 가지 증거를 제시한다.

첫째, 대학원 철학 수업에서 SD 논의를 폐회 토론으로 옮기라는 권고를 받아들였다는 사실. 이것은 박지민의 자리이다. 김철수라면 그 권고에 저항했을 것이고("SD가 본업이다"), 이영희라면 SD 논의를 아예 빼버렸을 것이다("철학에 불필요하다"). 박사는 두 영역을 짜임 관계로 배치하는 권고를 수용했다.

둘째, 박사가 박구용 교수의 이념적 경향을 비판적으로 추적하면서도 박구용 교수에 대한 학자적 존경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이것 또한 박지민의 자리이다. 박사는 박구용 교수의 권위에 완전히 복종하지도 않고, 완전히 거부하지도 않으며, 비판적 거리를 유지한 채 사유한다.

셋째, 박사가 아도르노의 GS 7 원전을 직접 읽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CLD 작업을 자기비판적으로 검토했다는 점. 이것은 정확히 박지민의 짜임관계적 사유이다.

다만 박사에게 한 가지 경고가 필요하다. 박지민의 자리는 외로운 자리이다. 어느 학술 장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으며, 두 학파로부터 비평을 받는다. 박사가 이 자리에 머물기로 결정한다면, 이를 견디기 위한 형식적·정서적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 박사가 신뢰할 수 있는 짜임관계의 동료들을 의식적으로 찾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그런 동료들이 흔치 않으며, 종종 국제 학술 네트워크를 통해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IV. 정리 — 박사가 짚어야 할 것

박사가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고 한 이 물음의 핵심은 다음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세 자리는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아니다. 다만 박사는 자신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를 의식적으로 알아야 한다. 모르고 있을 때, 박사는 자기 자신을 평탄화한다.

김철수도 정당한 자리이고, 이영희도 정당한 자리이며, 박지민도 정당한 자리이다. 잘못된 것은 어느 자리에 있는지 모르는 채로 글을 쓰는 것이다. 모르고 글을 쓸 때, 박사는 자기 작업을 어느 한쪽 잣대로 무의식중에 평탄화하게 된다 — 또는 두 쪽 잣대 사이에서 일관성 없이 흔들리게 된다.

자기 자리를 의식적으로 식별한 후에는, 그 자리의 형식적 요구를 충실히 따라야 한다. 김철수의 자리에 있다면 SD의 형식을 따르되 철학을 도구로 쓸 것. 이영희의 자리에 있다면 철학의 형식을 따르되 SD를 분석 대상으로 쓸 것. 박지민의 자리에 있다면 두 형식의 짜임관계를 자기 글의 형식으로 삼을 것.

V. 심화 성찰을 위한 제언

박사에게 한 가지 실천적 시험을 제안한다. 다음 두 주 동안 박사가 쓰는 글(메모·일기·논문 초안, 무엇이든)을 다음 세 가지 색깔로 표시해 보기를 권한다.

  • 파란색 — 김철수가 쓸 법한 문장: SD 모델러의 어조, 공학적 명료성, 모델 방정식의 표현.

  • 빨간색 — 이영희가 쓸 법한 문장: 철학자의 어조, 독일어 원전 인용, 부정 변증법적 정밀성.

  • 보라색 — 박지민만이 쓸 수 있는 문장: 두 영역을 동시에 의식한 채로 쓴 문장. 어느 한쪽 학자도 단독으로는 쓸 수 없는 문장.

두 주 후에 박사의 글을 펼쳐 보았을 때, 어떤 색이 가장 많을까? 그 색이 박사의 현재 자리이다. 그리고 박사가 어느 색을 늘리고 싶은가? 그것이 박사가 향하는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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