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UCA를 읽는 시스템사고의 눈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걸까요? VUCA를 읽는 시스템사고의 눈
안녕하세요, 생각하는 러너 벤자민입니다.
요즘 뉴스나 경영 서적을 보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VUCA(뷰카).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앞 글자를 딴 말이지요. 군사 전략 환경을 설명하는 데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경영·정책·교육까지—우리가 의사결정하는 거의 모든 장면을 설명하는 프레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VUCA가 자주 “혼란”의 다른 이름으로 소비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원래 이래, 어쩔 수 없어.” 이 문장이 입에 붙는 순간, VUCA는 통찰이 아니라 면피가 됩니다. 시스템사고 관점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전환은 하나입니다.
VUCA는 ‘세상의 사건’이 아니라, 사건을 반복 생산하는 ‘시스템 구조’의 표면 증상이다.
마라톤에서 오르막이 나오면 “길이 잘못됐다”고 말하기보다 “호흡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듯, VUCA도 “세상이 망가졌다”가 아니라 “내가 다루는 시스템의 작동 방식이 드러났다”는 신호로 읽어야 합니다.
1) VUCA 네 요소를 ‘구조 언어’로 번역하기
V: 변동성(Volatility) — 변화가 ‘춤추는’ 이유
변동성은 변화의 속도와 폭이 큰 상태입니다. 시스템 관점에서는 대체로 강화 피드백(Reinforcing feedback) 구조가 오랫동안 방치·유지되어서 비선형적으로 증폭되거나 감소됩니다. 작은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스피커로 나와 다시 마이크로 들어가는 '하울링' 현상을 떠올려 보세요. 억제할 틈(시간)도 없이 변화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태, 이것이 강화 피드백 구조에서 나타납니다.
한편,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이 지연(time delay) 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양파 파동, 돼지 파동과 같은 과잉 반응으로 더 요동칩니다.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뜨거운 물이 늦게 나오면, 우리는 대개 더 확 틀어버립니다. 그러다 “앗 뜨거!” 하고 급히 잠그죠. 사회·조직의 변동성도 종종 이처럼 지연을 견디지 못한 과잉반응(overshoot) 으로 만들어집니다. 이는 지연이 있는 문제 해결형 균형 피드백(Balancing Feedback) 구조에서 나타납니다.
핵심은 “변화를 막기”가 아니라, 증폭 구조가 어디서 생기는지를 보고 구조를 재설계하는 일입니다.
U: 불확실성(Uncertainty) — ‘모르는 것’이 아니라 ‘늦게 아는 것’
불확실성은 정보 부족처럼 보이지만, 더 정확히는 알아야 할 피드백이 늦게 오거나 왜곡되어 오는 상태입니다. 피드백이 늦으면 사람은 당장 보이는 대체 지표(대개 단기 지표)에 매달리기 쉽고, 그 반응이 다시 불확실성을 키웁니다.
시스템사고는 불확실성을 “없애는” 대신,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어떤 결과에도 버티는 구조(robustness) 를 만드는 방향으로 접근합니다. 정답 맞히기가 아니라, 학습이 가능한 구조 만들기입니다.
C: 복잡성(Complexity) — ‘많음’이 아니라 ‘얽힘’
복잡성은 요소가 많은 상태이기도 하지만, 실무에서 더 아픈 지점은 상호작용이 많아 인과를 선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즉 “1을 넣으면 1이 나온다”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100이 나오거나 -50이 나오기도 하는 비선형성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순화가 아니라, 시스템을 움직이는 지렛대 지점(leverage point)—그리고 당장의 행동을 주도하는 지배적 루프(dominant loop) 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모든 원인”이 아니라 “지금 패턴을 만드는 핵심 구조”를 붙잡을 때, 복잡성은 다룰 수 있는 문제로 바뀝니다.
A: 모호성(Ambiguity) — 현실이 아니라 해석이 갈라지는 지점
모호성은 “정보가 부족해서”만 생기지 않습니다. 같은 데이터를 보고도 서로 다른 세계관·가정·가치로 해석이 갈라질 때 모호성이 생깁니다. 시스템사고에서는 이것을 멘탈모델(정신 모델, mental model)의 차이로 봅니다.
여기서 인과순환지도(CLD)는 단순한 도식이 아니라, 내 머릿속 지도를 밖으로 꺼내어 서로 비교하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장치가 됩니다. “나는 이런 가정 때문에 위기라고 봤어. 너는 왜 기회라고 봤지?” 이 비교가 시작될 때 모호성은 비로소 명료함으로 이동합니다.
2) VUCA 대응 프레임을 시스템사고로 다시 읽기
흔히 VUCA 대응으로 또 다른 VUCA—Vision, Understanding, Clarity, Agility—를 말합니다. 저는 이것을 “멋진 슬로건”이 아니라 “구조를 다루는 운영 원리”로 해석해 보고 싶습니다.
Vision(비전) — 지연을 견디는 ‘기준점’
비전은 장식 문구가 아니라, 지연이 긴 시스템에서 과잉조정을 막는 기준점입니다. 마라톤 중반에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고(변동성) 완주라는 목표를 버리지 않죠? 단기적인 요동에 일희일비하여 과잉 반응(Overreaction)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중심축, 그것이 시스템 관점이 말하는 비전입니다. 단기 변동이 올 때마다 방향을 바꾸면, 시스템은 학습하지 못하고 진폭만 커집니다.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가 명확할수록, 피드백이 늦게 돌아오는 영역에서도 의사결정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Understanding(이해) — 정보량이 아니라 피드백을 읽는 문해력 (Feedback Literacy)
단순히 자료를 많이 모으는 체계적(Systematic) 노력만으로는 불확실성을 이길 수 없습니다. 진정한 이해는 **"내 행동이 시스템을 한 바퀴 돌아 나에게 어떻게 되돌아오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즉, 왜 이런 패턴이 반복되는지를 보는 눈입니다. 즉 사건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피드백 구조를 설명하는 능력입니다.
Clarity(명료성) — 변수 줄이기가 아니라 ‘지배적 피드백 루프 합의’
복잡한 세상에서 명료해진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단순하게 쳐내는 게 아닙니다. 수많은 상호작용 구조에서 지금 이 시스템을 움직이는 핵심 루프가 무엇인지를 함께 확인하는 것입니다. 강화 루프(R)와 균형 루프(B) 중 어디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 잡히면, 복잡성 속에서도 결정이 가능해집니다. 이 대목에서 제가 강조하는 것은 합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문제 해결을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 해결을 하는 당사자들이 합의해야 공동의 비전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Agility(민첩성) — 속도가 아니라 ‘학습 루프의 회전수’
민첩성은 빨리 뛰는 능력이 아니라, 가설–실행–피드백–수정의 루프를 짧게 돌리는 능력입니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쓰는 대신, 작게 시도하고 안전하게 실패(Safe-to-fail)하며 궤도를 수정해 나가는 태도입니다. 위에서 명료성에 대해 언급할 때 합의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합의된 내용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즉, 모든 합의 더 나아가서 모든 해석은 가설이라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래야 학습이 일어납니다.
3) VUCA 시대에 바로 써먹는 5가지 시스템 질문
VUCA를 구조로 읽겠다고 마음먹어도, 막상 현장에서는 “그래서 뭘 먼저 하지?”가 남습니다. 저는 다음 다섯 질문이 실천의 출발점이 된다고 봅니다.
- 패턴을 먼저 그린다: “최근 2~3년, 무엇이 반복되는가?”
- 경계를 합의한다: 무엇을 시스템 ‘안’으로 볼 것인가, ‘밖’으로 둘 것인가
- 피드백과 지연을 표시한다: 어디서 늦게 오고, 어디서 왜곡되는가
- 지배적 루프 2~3개만 잡는다: 전부가 아니라 ‘지금’ 중요한 것부터
- 학습 인프라를 설계한다: 합의한 가설을 확인하고 실험하듯이 검증한다.
맺음말: 파도를 멈추는 게 아니라, 파도를 읽는 법
VUCA는 우리를 겁주려는 괴물이 아닙니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연결되어 있고, 네가 보려면 구조를 봐야 한다”고 알려주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미분으로 쪼개서 보면 혼란스럽지만, 적분으로 합쳐서 보면 흐름이 보입니다. 오늘 하루, 눈앞의 불확실함을 ‘사건’으로만 보지 말고, 그 이면의 피드백·지연·정신모형을 한 번만 더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파도를 멈출 수는 없지만, 파도 타는 법은 배울 수 있습니다.
[함께 생각하기] 지금 여러분을 가장 힘들게 하는 VUCA 요소는 무엇인가요? 댓글로 남겨주시면 시스템 관점(Systemic Perspective)의 '원포인트 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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