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빈민 정책의 역설 ― Urban Dynamics가 던진 불편한 진실

 도시 빈민 정책의 역설 ― Urban Dynamics가 던진 불편한 진실

1969년, MIT의 제이 포리스터(Jay W. Forrester)는 도발적인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바로 Urban Dynamics입니다. 도시 문제, 특히 도시 빈민 정책을 시스템다이내믹스(System Dynamics) 모델로 분석한 이 책은 곧바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왜냐하면 포리스터의 모델은 “도시 빈민을 돕기 위한 정책이 오히려 도시를 더 나쁘게 만들 수 있다”는 불편한 결론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도시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다

포리스터는 도시를 산업(Industry), 주택(Housing), 인구(Population) 세 영역으로 나누고, 각 영역을 다시 세분화하여 모델링했습니다.

  • 산업: 고숙련·저숙련 일자리
  • 주택: 고급·중간·저가 주택
  • 인구: 부유층·노동자·도시 빈민

이 단순화된 구조를 통해 그는 “도시 빈민 정책”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는지 실험했습니다.




반직관적인 연구 결과들

모델의 시뮬레이션 결과는 우리의 직관과 달랐습니다.

  1. 공공주택 확대 → 도시 쇠퇴 가속화

    • 저가 주택을 늘리면 도시 빈민의 유입이 증가합니다.

    • 하지만 이들은 도시 생산성에 기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재정 부담이 커집니다.

    • 결국 기업과 중산층이 빠져나가면서 도시는 더 쇠락합니다.

  2. 복지 지원 확대 → 경제 활력 저하

    • 실업자 지원은 단기적으로 필요하지만,

    • 장기적으로는 노동시장 참여 동기를 약화시켜 일자리 창출이 줄어듭니다.

  3. 지원 중심 접근 → 의존성 강화

    • 근본적 대책 없이 구호 중심으로 접근하면 도시 빈민의 자립 능력이 약화되고,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즉, 좋은 의도로 설계된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다이내믹스에서 말하는 반직관적 행동(counterintuitive behavior)입니다.


시스템의 역설: 왜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가

시스템다이내믹스에서 자주 언급되는 개념이 바로 “반직관적 행동(counterintuitive behavior)”입니다. 즉, 직관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믿었던 해법이 실제로는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현상입니다.

  1. 내부 정책이 문제를 야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지만, 정작 시스템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와 정책이 장기적으로 자기 스스로를 옥죄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도시 빈곤 해소를 위한 주택정책이나 복지정책이 “도시 활력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 대표적 예시입니다.

  2. 해결책이 문제를 키운다
    해결을 위해 도입된 정책(예: 공공주택 건설)이 도시 내 일자리 기반을 잠식하고, 세원(稅源) 부담을 가중함으로써 인구 유출과 낙후를 더욱 가속화합니다. 이처럼 “좋은 의도”가 결과적으로 도시를 더 큰 난국으로 몰아넣는 것을 Forrester는 도시 시스템의 구조적 관점에서 설명했습니다.


왜 큰 비판을 받았을까?

책이 나오자 많은 이들은 포리스터를 비난했습니다. “도시 빈민 지원을 반대한다”는 메시지로 오해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를 “냉혹하다”고, 심지어 “보수적 이데올로그”라고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핵심 주장은 단순했습니다.

“시스템은 가치 중립적이다. 문제는 우리가 만든 정책이 장기적으로 어떤 구조적 결과를 낳는가다.”

즉, 특정 집단을 비난한 것이 아니라, 정책 개입이 가져오는 구조적 효과를 분석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Forrester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을 때, “흑인 빈민을 몰아내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스템다이내믹스 자체는 “정책의 옳고 그름”을 윤리·이념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 시스템 모델은 “어떤 정책을 실행하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가”를 구조와 시뮬레이션 관점에서 보여줄 뿐,
  •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할지는 결국 정책입안자와 사회적 합의의 몫입니다.

이는 Jay Forrester가 여러 인터뷰에서 강조한 부분으로, 시스템은 가치판단을 하지 않으며구조가 행동을 결정한다(Structure drives behavior)”는 개념을 이해해야만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반직관적 사례들

포리스터의 연구는 도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양한 영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교통 정책: 도로 확장은 혼잡 완화가 아니라 더 많은 자동차를 불러오며 장기적으로 정체를 악화시킵니다.
  • 환경 정책: 어획량을 늘리면 단기적 소득은 오르지만, 결국 어족 자원이 고갈됩니다.
  • 보건 정책: 항생제를 남용하면 단기적 치료 효과는 크지만, 장기적으로 항생제 내성이 확산됩니다.
  • 교육 정책: 단기 성적 향상을 위한 과도한 보충수업은 오히려 장기적 학습 동기를 떨어뜨립니다.

모두 직관과는 반대되는, 시스템의 역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사고 vs. 시스템다이내믹스

1) 시스템사고(Systems Thinking)란?

시스템사고는 복잡한 문제를 “부분이 아닌 전체 관점”에서 바라보며, 인과관계와 피드백 루프를 인식하는 정성적(qualitative) 접근입니다. 사람, 조직, 환경 사이의 연결을 이해하고, “이 문제는 왜 계속 악순환이 될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데 주력합니다.

2) 시스템다이내믹스(System Dynamics)란?

시스템사고가 ‘문제의 복잡성을 보는 렌즈’라면, 시스템다이내믹스는 거기에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을 결합한 정량적(quantitative) 방법론입니다.

  • “어떤 정책 변화가 5년, 10년 후에는 어떤 파급 효과를 낳을까?”
  • “내가 예상치 못했던 역효과는 무엇인가?”
    이를 컴퓨터 모델로 만들어 실험적으로 확인함으로써, 반직관적 행동을 예측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게 합니다.

Forrester는 한 인터뷰에서 시스템사고를 가리켜 “시스템다이내믹스로 가는 입구”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시스템사고가 복잡한 상호작용과 피드백 개념을 깨닫게 해주는 ‘문을 여는’ 역할을 한다면, 시스템다이내믹스는 실제 정량 분석을 통해 정책 설계와 의사결정에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도구입니다.

오늘의 교훈

Urban Dynamics는 도시 빈민 문제의 해답을 제시한 책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상식적 해법”이라고 믿는 것들이 장기적으로 어떤 함정을 낳는지를 보여준 책입니다.

그의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정책은 단기적 효과가 아니라,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결과를 보라.”

시스템다이내믹스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불편할 정도로 정직하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구조를 드러내 줍니다. 그래서 때로는 충격이나 혼란을 주고, 거부 반응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내 직관과 다른 결과를 마주할 때 여러분은 어떤 태도를 보이시나요?

참고: Jay Forrester의 인터뷰 발췌 메모

  • “시스템사고는 시스템다이내믹스로 들어가는 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스템사고로 문제의 복잡성을 깨닫게 되지만, 실제로 모델을 만들어 시뮬레이션해보기 전까지는 우리의 직관이 얼마나 틀릴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 “Urban Dynamics에서 공공주택 건설이 도시를 더 힘들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을 때, 많은 비난이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시스템이 ‘어떤 결과를 낳는가’를 분석한 것이지, 빈민층을 배제하자는 주장을 한 게 아니다.”

(인터뷰 내용은 Jay Forrester가 MIT에서 진행한 구술자료와 Urban Dynamics 관련 세미나, 그리고 기타 문헌을 참조한 것임.)


📖 참고 문헌

  • 포리스터, 제이 W. (1969). Urban Dynamics. MIT Press.
  • Sterman, J. D. (2000). Business Dynamics: Systems Thinking and Modeling for a Complex World. Irwin McGraw-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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