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법칙(Thinking in Systems) 안내서 (1) - 서문
시스템사고의 시작: 슬링키가 가르쳐 준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
"공장을 완전히 무너뜨려도 그 공장을 세운 합리성을 남겨 둔다면, 그 합리성이 다시 다른 공장을 세울 것이다." - 로버트 피어시그
(여기서 합리성rationality은 이유나 목적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왜 우리는 항상 같은 문제에 부딪힐까?
여러분은 이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회사에서 열심히 문제를 해결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문제가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경험 말입니다. 혹은 개인적으로 나쁜 습관을 고치려고 노력했는데, 한동안 잘되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경험은 어떠신가요?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이유는 우리가 문제의 증상만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원인인 구조는 그대로 둔 채 말이죠.
슬링키 실험: 시스템사고의 첫 번째 통찰
MIT에서 시스템다이내믹스를 가르치던 도넬라 메도즈는 수업 시간마다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바로 슬링키(용수철 장난감)를 이용한 실험이었죠.
메도즈 교수는 슬링키를 한쪽 손바닥에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 윗부분을 잡아 늘어뜨린 뒤 아래쪽 손을 치웠습니다. 그러면 슬링키가 요요처럼 위아래로 튕기기 시작합니다.
"무엇이 슬링키를 이렇게 위아래로 튕기게 만들었나요?" 메도즈가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교수님 손이요. 아래쪽 손을 치웠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메도즈는 미소 지으며 이번에는 슬링키를 상자에 담아 같은 실험을 반복했습니다. 상자를 한쪽 손바닥에 올린 뒤, 다른 손으로 상자의 윗테두리를 잡고 아래에서 상자를 받치던 손을 뺍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상자는 조용히 한 손에 매달려 있을 뿐이었죠.
"다시 묻겠습니다. 무엇이 슬링키를 위아래로 튕기게 만들었나요?"
답은 분명히 슬링키 안에 있었습니다. 손은 단지 스프링 구조 안에 잠재된 행동을 억제하거나 해제할 뿐이었습니다. 외부 자극(손을 치우는 것)은 같지만, 시스템 구조(자유로운 슬링키 vs. 상자 안에 있는 슬링키)에 따라 행동(변화)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시스템의 핵심: 구조가 행동을 결정한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 이론의 핵심입니다. 시스템의 행동을 유발하는 원인은 주로 그 시스템 자체에 있습니다.
이 관점으로 세상을 다시 보면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 기업 경영에서
- 경쟁사 때문에 시장 점유율을 잃는 것이 아니라, 자사의 사업 정책과 구조 때문입니다.
- 직원들의 '게으름' 때문에 생산성이 낮은 것이 아니라, 조직의 인센티브 구조와 업무 프로세스 때문입니다.
🏥 건강 관리에서
- 독감 바이러스가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을 우리 몸이 만든 것입니다.
- 약물 중독은 개인의 의지력 문제가 아니라, 더 큰 사회 구조와 영향의 일부입니다.
🌍 사회 문제에서
- 정치 지도자가 경기 호황과 불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장 경제 구조의 영향입니다.
- 유가 상승은 석유 수출국만의 책임이 아니라, 석유 의존적 경제 구조를 만든 수입국의 책임도 있습니다.
맹인들과 코끼리: 부분만으로는 전체를 알 수 없다
수피교의 고전적인 우화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맹인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각자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이야기 말입니다:
- 귀를 만진 사람: "양탄자 같아요"
- 코를 만진 사람: "파이프 같아요"
- 다리를 만진 사람: "기둥 같아요"
이들은 모두 한 부분씩은 정확하게 파악했지만, 코끼리 전체는 놓쳤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안다고 해서 그 시스템의 행동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두 가지 사고방식의 만남
흥미롭게도 우리는 이미 두 가지 사고방식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 분석적 사고 (학교에서 배운 것)
- 원인과 결과를 추적
-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 이해
- 외부 요인에서 해답 찾기
- 통제 가능한 해결책 추구
🌱 직관적 시스템사고 (타고난 것)
- 복잡한 상호관계 인식
- 전체론적 이해
- 패턴과 연결고리 파악
- 내재된 구조 인식
두 방식 모두 소중합니다. 하지만 급속하게 복잡해지고 상호연결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시스템사고가 특히 중요해졌습니다.
시스템사고가 주는 자유
시스템사고를 익히면 다음과 같은 능력을 얻게 됩니다:
- 근본 원인 파악: 증상이 아닌 구조적 문제 인식
- 새로운 기회 발견: 기존에 보이지 않던 해결책 찾기
- 미래 예측: 현재 구조가 만들어낼 미래 패턴 예상
- 효과적 개입: 작은 변화로 큰 변화를 만드는 지렛점 찾기
여행의 시작
이 글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여행을 함께 할 예정입니다:
- 시스템의 기본 구조 이해하기
- 시스템 동물원 구경하기 (일상 속 다양한 시스템들)
- 시스템의 놀라운 행동 탐구하기
- 시스템 함정들과 기회들 발견하기
- 변화의 지렛점 찾기
- 시스템사고자의 지혜 배우기
마무리: 다른 질문, 다른 세상
MIT에서 다트머스대학으로 옮긴 메도즈의 연구팀을 지켜본 한 공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넬라 메도즈 교수는 다르네요. 던지는 질문의 종류가 달라요. 메도즈 교수는 제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십니다. 뭔가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접근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죠? 왜 그렇죠?"
이것이 바로 시스템사고가 주는 선물입니다. 다른 질문을 던지고, 다른 것을 보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세상은 이미 충분히 복잡합니다. 하지만 그 복잡성 속에서 아름다운 패턴과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패턴을 이해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시스템사고의 여행이 지금 시작됩니다. 🌟
다음 글에서는 시스템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시스템의 기본 구성 요소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일상에서 경험하는 시스템들을 찾아보세요. 가족, 회사, 도시, 심지어 여러분 자신도 모두 복잡하고 아름다운 시스템입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