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와 시스템사고: 미분과 적분의 삶

〈시지프스와 시스템사고: 미분과 적분의 삶〉

나는 종종 나의 운동 기록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데이터를 남기고 있는가? 가민 시계의 수치, 계단 오르기의 시간, 달리기의 구간 기록…. 외부에서 본다면 그것은 마치 삶을 데이터 실험실로 환원시킨 집착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 그것은 단순한 관리가 아니다. 오히려 삶을 살아내는 철학적 태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시지프스의 돌, 그리고 순간의 긍정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시지프스의 신화 (Le Mythe de Sisyphe, 1942)』에서 끝없는 형벌을 받은 인간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돌을 산 위로 굴려 올리지만, 매번 정상에 이르기 전에 다시 굴러 내려오는 시지프스. 누구라도 허무와 절망에 빠질 수 있는 이 상황에서 카뮈는 역설적인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시지프스를 행복한 인간으로 상상해야 한다.”
Il faut imaginer Sisyphe heureux. / One must imagine Sisyphus happy 



 

겉으로 보기에 시지프스의 노동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카뮈는 바로 그 부조리(Absurd)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발견한다. 인간은 의미를 갈망하지만 세계는 절대적 의미를 주지 않는다. 이 충돌이 바로 부조리다. 그런데 시지프스는 그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을 굴리며 순간을 긍정한다. 카뮈에게 행복이란, 의미를 찾았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를 직면하고도 긍정하는 힘 속에서 가능하다


미분적 삶, 적분적 삶

나는 이 이미지를 운동 기록과 연결시켜 본다. 돌을 굴리며 길가의 풀, 바람, 땀방울을 느끼는 시지프스처럼, 나 역시 매 순간의 운동 속에서 미분적 삶을 경험한다. 기록은 그 순간들을 붙잡아 두는 도구다.

그러나 기록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축적된 데이터는 언젠가 적분적 패턴으로 드러난다. 내 몸의 리듬, 계절의 변화, 회복과 성장의 사이클…. 그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삶의 궤적이다. 나는 그 패턴을 확인하면서 나의 삶을 재조정하고, 새로운 피드백 루프를 만든다.


시스템사고와 시지프스의 행복

시스템사고의 관점에서 보면, 이 과정은 단순하다.

  • 🔗 반복되는 운동이라는 유량(Flow)이 있고,
  • 📦 그 결과 축적되는 기록이라는 저량(Stock)이 있다.
  • 🔁 저량에서 발견한 패턴은 다시 나의 선택과 훈련을 조정하는 피드백을 만든다.

이 구조 속에서 나는 무의미한 반복을 벗어나, 시지프스처럼 순간을 긍정하며 동시에 적분된 삶의 패턴을 새롭게 창조해 나간다.


맺음말

삶은 종종 무거운 돌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돌을 굴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길가의 풀을 보고, 바람을 맞고, 순간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쌓이면, 결국 우리 삶의 적분적 의미가 된다.

나는 그것을 시스템사고와 카뮈의 시지프스가 만나는 지점이라 부른다. 반복 속에서도 순간을 긍정하고, 축적된 패턴 속에서 다시 삶을 재창조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운동 기록을 남기는 진짜 이유이며, 나에게 주어진 “저주의 돌”을 기쁨의 돌로 바꾸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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