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는 나의 인식에 맞춰지는가?” — 시스템사고는 칸트를 사랑합니다.

 

“왜 세계는 나의 인식에 맞춰지는가?”

— 시스템사고는 칸트를 사랑합니다.


🔹 프롤로그: 철학 사유의 전장을 돌파한 사령관, 칸트


“칸트는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주지만, 절대 수영장에 들어가진 않는다”

위 내용은 헤겔이 칸트가 사유의 조건을 언급하지 진리를 다루지 않는다고 비꼬면서 언급한 수영상 비유입니다. 하지만, 칸트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 같습니다.  


저는 헤겔이 칸트를 비판한 관점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칸트는 대상(본질)을 탐구하려는 철학적 관점을 인식의 문제로 전환시킨 공로가 큽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 중심의 사고를 르네상스의 정신처럼 인간 중심 사고로 대 전환이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성의 지위를 부각시킨 것입니다. 즉, 칸트는 기존의 형이상학적, 종교적 사고 체계와 일대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 있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당연히 칸트 입장에서는 헤겔의 역사적 자기 운동성에 대해 사유를 할 여력이 없었거나 알고 있어서 사유의 대적 전선에 불필요하다고 여겼을지 모릅니다. 그런 맥락을 무시한 채 헤겔은 칸트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점을 들어 조롱하는 태도를 갖는 것은 옳지 못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18세기 후반, 유럽의 사상계는 거대한 세 갈래의 전통이 충돌하는 치열한 전쟁터였습니다.

  • ⛪️ 형이상학과 종교 전통: 신 중심의 절대 진리를 전제하고 인간 이성을 종속시켰습니다.

  • 🔬 자연과학과 경험주의 전통: 관찰과 실험만이 진리라는 논리로 이성의 보편적 판단 능력을 제한했습니다.

  • ⚖️ 합리주의 독단론: 이성만으로도 세계 전체를 인식할 수 있다고 믿는 합리주의적 독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전선의 충돌 속에서,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가 등장합니다. 그는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논리의 칼로 무장한 채 가장 위험한 전략을 선택합니다.

바로 “경계 설정”(Grenzziehung)이라는 사유의 혁명이었습니다.

🚨 위험천만한 전략: “경계를 묻는다”는 것

칸트는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사유했습니다.

  •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ßen Vernunft, 1793)는 검열당했고,

  •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철학자에게 종교에 대한 발언을 삼가라고 명령합니다.

  • 칸트는 이에 단호하게 답합니다:

"나는 폐하의 권위를 존중하며, 앞으로는 종교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저술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는 그런 명령을 받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Ich achte die Autorität Eurer Majestät und werde in Zukunft in Religionssachen nicht mehr schreiben; um aber auch nie wieder solchen Befehl zu erhalten, schreibe ich dieses.)
—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서문


그는 한 손에는 이성의 자율성(Autonomie der Vernunft),
다른 손에는 이성의 한계(Begrenzung der Vernunft)를 들고 있었습니다.

  • “신은 믿을 수는 있지만 증명할 수는 없다”는 선언은 신학적 권위에 대한 철학적 반란이었고,

  • “이성은 무한하지 않지만, 그 안에서 자율적이다”는 명제는 인간 중심 철학의 전환점이었습니다.


🔹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인식의 조건을 묻다

칸트는 철학의 관점을 뒤집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인식이 대상에 맞춰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칸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까지는 원칙적으로 모든 인식은 대상에 맞춰진다고 가정했다. […] 이제 하나의 시도를 해보자. 대상이 우리의 인식에 맞춰진다고 가정하면 더 잘 들어맞는 것은 아닐까?”
(Bis jetzt nahm man an, alle unsere Erkenntnis müsse sich nach den Gegenständen richten, [...] Ich versuche hier, ob wir nicht mehr Glück hätten, wenn wir annähmen, die Gegenstände müssten sich nach unserem Erkenntnis richten.)
—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제2판 서문 Bxvi


그 결과 칸트는 인식이 구성한 세계, 즉 현상(Erscheinung)과
우리가 인식할 수는 없지만 존재한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는 물자체(Ding an sich)를 구분합니다.


🔹 초월철학 vs 형이상학: 질문을 바꾸다

형이상학이 “신은 존재하는가?”를 물었다면,
칸트는 “우리는 신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나는 모든 인식을 초월적이라 부르는데, 이는 인식의 대상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대상에 대해 인식할 수 있는 방식, 즉 선험적으로 가능한 방식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Ich nenne alle Erkenntnis transzendental, die sich nicht sowohl mit Gegenständen, sondern mit unserer Erkenntnisart von Gegenständen, so fern diese a priori möglich sein soll, überhaupt beschäftigt.)
—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제2판 서문 B25
  • 초월적(transzendental):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

  • 초월(transzendent): 경험을 넘어서는 개념들 (신, 영혼 등)

  • 경험적(empirisch): 감각에 의해 주어지는 것


🔹 세 비판서, 세 가지 경계

  1. 『순수이성비판』: 인식의 경계

    • 우리는 자연법칙까지는 알 수 있으나, 그 너머는 인식 불가능하다.

  2. 『실천이성비판』: 도덕의 경계

    • 자유는 인식할 수 없지만, 도덕의 필수 조건으로 가정되어야 한다.

  3. 『판단력비판』: 미적 판단의 경계

    • “이것은 아름답다”는 주관적이지만, 타인에게 보편성을 요구한다.


🔹 시스템사고와 칸트: 조건을 묻는 사유

시스템사고도 묻습니다:

  • “이 시스템은 왜 그렇게 작동하는가?”

  • 그러나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 시스템이 그렇게 작동 가능하려면 어떤 조건이 전제되어야 하는가?”

이것이 칸트의 초월철학적 질문과 맞닿습니다.

조직 변화의 예

단순히 “왜 변화가 필요하지?”를 넘어서, “변화가 실제로 가능하려면 무엇이 갖추어져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변화 수용성, 권한 분산, 심리적 안전, 제도적 유연성 등은 변화 가능성의 조건입니다.

정책 분석의 예

기본소득제라는 정책은 자금뿐 아니라, 국민 신뢰, 재정 안정성, 노동관의 변화 등 다양한 조건 위에서만 작동합니다. 이러한 조건을 묻는 것이야말로 시스템사고 속의 칸트 철학입니다.


🔹 맺으며: 나의 시스템 경계는 정당한가?

칸트는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 “나는 지금 어떤 조건 하에서 세계를 해석하고 있는가?”

  • “내가 설정한 인식의 경계는 정당한가?”

  • “내 판단에는 어떤 철학적 책임이 따르는가?”

시스템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 모델링의 경계 설정은 가치중립적이지 않습니다.

  • 시스템의 구조를 넘어서, 그것이 작동 가능한 전제를 탐구해야 합니다.

  • 결국, 조건을 묻는 것은 책임을 묻는 일입니다.

“나는 무엇을 조건으로 보고 있는가?”

그 질문을 품는 순간, 우리는 이미 칸트와 함께 사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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