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 이름 하나에도 철학이 있다: 시스템다이내믹스에서의 변수 명명과 철학적 고찰
변수 이름 하나에도 철학이 있다: 시스템사고에서의 변수 명명과 철학적 고찰
시스템다이내믹스(System Dynamics, SD)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그냥 A 법령을 그대로 변수로 쓰면 안 돼요? 어차피 인과관계의 결과물로 법이 만들어진 거잖아요."
아래 인과관계 표기 때문입니다.
대형마트와 재래시장 간의 차이
→ 시장 상인의 법 개정 요구 수준(+)
→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2014)
겉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대형마트와 재래시장과의 경쟁력 차이로 전통시장이 고사하게 되자 정부의 정책 개입을 요구했고 이 요구가 강해지자 특별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스템다이내믹스의 관점에서는 중요한 오류가 있습니다.
왜 "전통시장 특별법"이라는 변수명은 문제가 되는가?
SD에서 변수는 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특정 법령(예: "전통시장 특별법")은 변수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법은 한 번 만들어지면 고정된 명칭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에 따라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습니다.
Sterman의 기준
세계적인 SD 교과서인 John Sterman의 Business Dynamics에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5.2.6. Variable Names
Variable Names Should Be Nouns or Noun PhrasesThe variable names in causal diagrams and models should be nouns or noun phrases. The actions (verbs) are captured by the causal links connecting the variables. A causal diagram captures the structure of the system, not its behavior—not what has actually happened but what would happen if other variables changed in various ways. Figure 5-12 shows examples of good and bad practice.
The correct diagram states: If costs rise, then price rises (above what it would have been), but if costs fall, then price will fall (below what it would have been). Adding the verb “rises” to the diagram presumes costs will only rise, biasing the discussion towards one pattern of behavior (inflation). It is confusing to talk of a decrease in costs rising or a fall in price increases—are prices rising, rising at a falling rate, or falling?
Variable Names Must Have a Clear Sense of Direction
Choose names for which the meaning of an increase or decrease is clear, variables that can be larger or smaller. Without a clear sense of direction for the variables you will not be able to assign meaningful link polarities.
(Business Dynamics, Chapter 5, p.152)
변수명은 명사나 명사구여야 한다인과순환지도와 모델에서 변수명은 명사나 명사구여야 한다. 행동(동사)은 변수들을 연결하는 인과관계 링크에 의해 포착된다. 인과순환지도는 시스템의 구조를 포착하는 것이지, 시스템의 행동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다. 즉,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다른 변수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나타낸다. Figure 5-12는 좋은 사례와 나쁜 사례의 예시를 보여준다.
올바른 다이어그램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비용이 증가하면 (그렇지 않았을 경우보다) 가격이 증가하고, 비용이 감소하면 (그렇지 않았을 경우보다) 가격이 감소한다. 다이어그램에 "상승한다"라는 동사를 변수명으로 사용하는 것은 비용이 오직 상승하기만 할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으로, 논의를 한 가지 행동 패턴(인플레이션)으로 편향시킨다. 비용 상승의 감소, 비용 감소의 증가, 가격 증가의 하락, 가격 하락의 증가를 개념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혼란스럽다 - 도대체 가격이 상승하는 것인가? 하락하는 것인가? 비용이 상승하는 것인가? 하락하는 것인가? 상승폭, 하락폭을 의미하는 것인가? 상승 속도, 하락 속도를 의미하는 것인가?
변수명은 명확한 방향감각을 가져야 한다
증가나 감소의 의미를 추가할 수 있는 명확한 이름, 즉 더 크거나 더 작을 수 있는 변수들의 이름을 선택하라. 변수들에 대한 명확한 방향감각이 없으면 의미 있는 링크 극성을 부여할 수 없을 것이다.
[해설]
1. 명사/명사구 사용 원칙
"The variable names in causal diagrams and models should be nouns or noun phrases. The actions (verbs) are captured by the causal links connecting the variables."
활용 포인트: "○○법", "○○정책"과 같은 고유명사는 표면적으로 명사지만, 실제 모델 문맥에서는 '법을 제정한다', '정책을 실시한다'와 같은 행위(verb)를 암시하거나 함의하는 경우가 많다. 시스템다이내믹스에서는 행동은 연결선이 담당하고, 변수명은 순수한 명사 또는 명사구로 구성되어야 하므로, 변수명은 "정책 강도", "지원 수준"처럼 행위를 제거한 구조적 개념으로 표현해야 한다.
2. 구조 vs 행동(변화)의 구분
"A causal diagram captures the structure of the system, not its behavior—not what has actually happened but what would happen if other variables changed in various ways."
활용 포인트: 특정 법명은 "실제 발생한 일(what has actually happened)"에 해당하므로,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what would happen if other variables changed)"을 나타내는 변수명이 되어야 함.
3. 방향성의 명확성
"Choose names for which the meaning of an increase or decrease is clear, variables that can be larger or smaller. Without a clear sense of direction for the variables you will not be able to assign meaningful link polarities."
활용 포인트: "전통시장 특별법"은 증가/감소의 의미가 불명확하지만, "전통시장 정책 지원 수준"이나 "전통시장 정책 지원 강도"는 명확한 방향성을 가짐. 수준이 높다, 낮다. 강도가 높다(강하다), 낮다(약하다).
법명 사용을 피해야 하는 논리적 근거:
이 원칙들을 종합하면, 특정 법명을 변수로 사용하는 것은 SD 모델링의 기본 원칙에 위배됩니다:
- 구체적 사건이 아닌 동적 속성을 나타내야 함
- 연속적으로 변할 수 있는 특성이어야 함
- 명확한 방향성(강화/완화, 증가/감소)을 가져야 함
따라서 "○○법" 대신 "○○ 정책 강도", "○○ 규제 수준", "○○ 집행 정도" 등을 사용하는 것이 SD 원칙에 부합합니다.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예시
잘못된 예:
-
변수명: 학교폭력예방법, 청소년 보호법
이런 변수들은 고정된 사건, 인물, 고유명사입니다.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기 때문에 SD에서는 쓸 수 없습니다.
올바른 예:
-
학교폭력 예방 정책의 강도
-
청소년 보호를 위한 법적 보호 수준
이렇게 바꾸면 시간 흐름에 따라 값이 변하는 '강도, '수준' 등으로 모델이 만들어집니다.
A 법령, 즉 전통시장 특별법의 실제 적용 예시
대형마트와 재래시장 간의 차이 심화 → 시장 상인의 법 개정 요구 수준 증가 → 전통시장 지원 정책의 강도 증가 → 전통시장 매출
(인과관계 표기법을 적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형마트와 재래시장 간의 차이 → 시장 상인의 법 개정 요구 수준 (+)
→ 전통시장 지원 정책의 강도 (+) → 전통시장 매출
여기서 핵심 변수는 "전통시장 지원 정책의 강도"입니다. 이 변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강화될 수도 있고 약화될 수도 있으며, 사회적 요구에 따라 변화하는 정책의 동적 속성을 반영합니다. 그 결과 법이 개정되거나 시행령이 추가될 겁니다. 따라서, 고유 명사를 변수명으로 사용하고 싶다면, 해당 고유 명사의 본질, 쓰임새, 조건, 등 변화되는 미분적인 특징을 표기해야 합니다.
📋 실무자를 위한 체크리스트
❌ 피해야 할 변수명: 고유명사, 특정 법령명, 개별 사건명
✅ 권장하는 변수명: ~수준, ~강도, ~정도, ~율, ~비율
예시 변환:
- "청년고용촉진특별법" → "청년고용 지원정책 강도"
- "코로나19 방역 지침" → "감염병 방역 조치 수준"
- "그린뉴딜 정책" → "친환경 정책 투자 강도"
철학적으로 왜 중요한가? 변수 이름 하나에 깃든 사유
1. 후설(Husserl): 현상학적 환원과 본질 직관 (phenomenological reduction & Wesensschau)
📘 철학 용어 설명
후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연적 태도(natural attitude)를 잠시 판단 보류(epoche)하고, 의식의 작용이 지향하는 대상(noema)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본질(Wesen)을 직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현상학적 환원(phenomenological reduction)이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이름이나 현상보다, 그 현상이 지향하는 기능과 목적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 쉬운 비유
예를 들어, 누군가 “전통시장 특별법”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이름이 지닌 정치적 맥락이나 감정, 뉴스를 통해 익힌 이미지들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현상학적으로는 그 ‘이름’(noema)이 아니라, 그 법이 무엇을 지향하고 수행하는가, 즉 시장 보호 수준이나 상인 지원 강도와 같은 본질적 구조(Wesensstruktur)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시스템다이내믹스 연결
→ 따라서 SD 모델에서는 “전통시장 특별법”이라는 현상적 명칭 대신, “시장 보호 수준”, “지원 정책의 강도”처럼 시간에 따라 변하는 본질적 구조를 변수로 잡아야 합니다.
2. 하이데거(Heidegger): 존재론적 차이와 도구적 존재 (Seinsweise & Zuhandenheit)
📘 철학 용어 설명
하이데거는 존재자(Seiendes)와 존재(Sein)를 구분하며, 사물은 단지 '거기에 있음'(Vorhandenheit)으로서가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방식(Zuhandenheit)을 통해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합니다.
🧶 쉬운 비유
망치가 고장 나지 않고 잘 작동할 때 우리는 그것을 인식조차 하지 않고 ‘쓰는’ 데 집중합니다. 하지만 망치가 부러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자각합니다. 법령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법령이 무엇을 위해 작동하고 있는지가 중요하지, 이름 그 자체는 핵심이 아닙니다.
🔁 시스템다이내믹스 연결
→ SD 모델에서 “전통시장 특별법”이라는 존재자를 변수로 쓰기보다는, “시장 지원 작동 방식”, “정책 실행의 실효성 수준” 등 존재 방식(Seinsweise)에 해당하는 변수로 모델링하는 것이 옳습니다.
3. 들뢰즈(Deleuze): 생성과 다양체의 논리 (agencement & molecular flow)
📘 철학 용어 설명
들뢰즈는 사건(événement)을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들의 배열(agencement) 속에서 생성되는 흐름(becoming)으로 이해합니다. 그는 큰 덩어리로 뭉친 구조(몰적 구조, molar unity)보다는 작은 요소들의 개별적 흐름(분자적 흐름, molecular flow), 중심보다 뿌리와 같은 그물망식 연결(리좀적 연결, rhizomatic connection)에 주목합니다.
🧶 쉬운 비유
예를 들어, “전통시장 특별법”은 단일한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형마트 확산, 상인 조직화 수준, 정치적 압력, 여론 동향 등 다양한 요인들이 관계적으로 배열된 흐름 속에서 생성된 사건입니다.
🔁 시스템다이내믹스 연결
→ 따라서 “전통시장 특별법”이라는 몰적 고정물보다, “상인의 요구 축적 수준”, “정치적 대응 강도”, “법 제정에 영향을 미친 흐름”을 동적인 변수로 모델링해야 생성 조건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습니다.
4. 톨스토이(Tolstoy): 미분과 적분의 역사관 (infinitesimal causality & historical integration)
📘 철학 용어 설명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위대한 인물 중심의 역사 해석을 비판하며, 수많은 개인의 미소한 의지들(infinitesimals)이 집합적으로 통합되어 역사라는 흐름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미분과 적분의 은유로 설명됩니다.
"역사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새로운 미분방정식 분야가 적용되어야 한다."
Only by taking infinitesimally small units for observation (the differential of history, that is, the individual tendencies of men) and attaining to the art of integrating them (that is, finding the sum of these infinitesimals) can we hope to arrive at the laws of history.
역사의 법칙에 도달하려면, 오직 관찰 단위를 무한히 작게 나누어(곧 ‘역사의 미분’이라 할 수 있는, 개개인의 의지 경향성을 살피고), 그 미소 단위들을 통합하는 기술(곧 적분)을 익혀 그것들의 총합을 구하는 방식만이 유일한 길이다.
- 출처: 『전쟁과 평화』 중 Book 11, Chapter 1
🧶 쉬운 비유
“전통시장 특별법”은 어떤 위대한 정치가가 만든 단일 사건이 아니라, 개별 상인의 절박함, 소비자 행동의 작은 변화, 지역 언론의 관심도 등 무수한 작고 미세한 요소들의 누적이 만든 흐름입니다.
🔁 시스템다이내믹스 연결
→ 따라서 SD 모델에서는 “전통시장 특별법” 대신, “상인의 생존 위기감”, “정책 지지 여론의 축적”, “지역 사회의 연대감 변화율” 등 미소한 요인들을 변수화하여 전체 흐름을 구성해야 진정한 ‘역사의 법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변수명 하나에도 세계관이 담긴다
우리가 SD에서 변수명을 정할 때는 단지 설명을 위한 라벨을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변수명을 통해 우리는 어떤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
"전통시장 특별법"이라고 쓰면, 고정된 명사를 나열하는 데 그칩니다.
-
"전통시장 지원 정책의 강도"라고 쓰면,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요인에 의해 작동하는지를 탐구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변수 이름 하나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서, 현상과 본질, 개인과 구조, 고정과 흐름, 영웅과 집단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태도를 반영합니다. 시스템다이내믹스는 단지 시스템을 모델링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 그 자체인 것입니다.
한 개의 변수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결국 우리가 세상을 어떤 렌즈로 보고, 무엇을 변화 가능하다고 믿는가에 대한 선언입니다.
참고문헌:
-
John D. Sterman, Business Dynamics: Systems Thinking and Modeling for a Complex World, Chapter 5, p.152
-
Edmund Husserl, Logical Investigations
-
Martin Heidegger, Being and Time
-
Gilles Deleuze, The Logic of Sense
-
Leo Tolstoy, War and Peace
관련 자료:
|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