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ersity Myth] #1. 콜럼버스는 정말 '최초의 다문화주의자’였을까?
[The Diversity Myth] #1. 콜럼버스는 정말 ‘최초의 다문화주의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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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스템사고 관점에서 보는 문화의 이분법
최근에 읽고 있는 책입니다. 첫 장을 읽고 나서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책일 수 있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몇 마디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남깁니다. 이 책, The Diversity Myth: Multiculturalism and Political Intolerance on Campus는 데이비드 삭스(David O. Sacks)와 피터 틸(Peter Thiel)이 1995년에 공저한 책으로,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고등 교육기관 내의 다양성, 다문화주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다문화주의와 다양성 담론이 자유로운 학문 탐구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다양성이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
그래서 이 책은 자유주의적 가치와 보수적 비판 사이에서 논쟁의 중심이 되었으며, 특히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투자자인 피터 틸의 초기 사상적 배경으로도 주목받아 왔습니다. 특히 피터 틸은 트럼프 정부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 책 첫 페이지는 콜롬버스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1492년, 콜럼버스는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신세계’였고, 그 만남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갈등과 질문을 낳고 있습니다. 그런데 《The Diversity Myth》라는 책의 도입부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Christopher Columbus, the First Multiculturalist”
“서구 문명과 비서구 문화의 첫 만남은 신세계를 수 세기 동안 괴롭혔다.”
이 표현을 읽고 저는 무척 불편했습니다. 왜 불편했을까 생각해 보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1. 문화는 정말 둘로 나눌 수 있을까?
이 문장은 문화라는 복잡한 현상을 아주 간단하게 이분법으로 잘라냅니다.
- 한쪽에는 “서구 문명”
- 다른 한쪽에는 “비서구 문화들”
이렇게 나누면, 문화는 무슨 전쟁 게임처럼 돼버립니다.
“우리 팀” vs “상대 팀”. “문명” vs “미개”.
하지만 문화는 절대 그렇게 나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김치조차도 수백 가지가 있고, 각 지방과 세대마다 다릅니다. 심지어 우리 가족만 해도 고춧가루 넣는 시점 하나로 토론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 세계 수천 년의 문화들을 두 덩어리로 나눌 수 있을까요?
이건 시스템사고 관점에서 보면 심각한 단순화 오류입니다.
2. 시스템사고는 문화의 순환을 본다
시스템사고는 복잡한 현실을 이해할 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피드백)를 중심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콜럼버스 이후의 문화 접촉도 단순한 충돌이 아닙니다.
- 언어가 섞이고,
- 음식이 바뀌고,
- 종교와 의복, 관념과 제도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 끊임없이 순환하고 변화합니다.
즉, 문화는 ‘정적인 항아리’가 아니라 ‘계속 진동하는 공명체계’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도입부는 그 복잡한 순환을 잘라내고 콜럼버스를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묘사합니다.
“서구 문명의 충격이 세계를 흔들었다!”
이건 마치 누군가 바다에 돌을 던지고는 물결을 ‘내가 만든 변화’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3. 우리는 문화의 ‘사용자’이자 ‘생산자’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시스템사고는 우리 모두가 구조의 일부이자 창조자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즉, 문화는 단지 우리에게 주어진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콜럼버스의 항해도 하나의 계기였지만, 그 이후 수세기 동안 서로를 이해하고, 섞이고, 때론 싸우고, 때론 배우면서 우리는 지금의 세계를 만들어온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다문화주의’는 누가 정의하는가?
콜럼버스를 ‘최초의 다문화주의자’라고 부른 저자의 표현은 사실상 다문화주의를 역설적으로 조롱하는 데 가깝습니다. 즉, “봐라, 다문화의 시작은 충돌이었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시스템사고 관점에서 보면 충돌도 순환의 일부이고, 갈등도 진화를 이끄는 요인입니다.
우리는 단지 ‘문화 간 거리’를 따지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문화들이 어떤 구조 속에서 만나고,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누가 그 구조를 설계하거나 은폐하고 있는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The Diversity Myth》가 주장하는 ‘다문화주의의 위선’이라는 테마가 어떻게 철학적으로 모순을 안고 있는지를 함께 탐색해보겠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니체의 ‘해석학적 인과성’을 시스템사고와 연결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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