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으로 달리고, 적분으로 늙어간다 – 마라톤에 대한 시스템사고

 

미분으로 살고 적분으로 드러난다 — 마라톤과 시스템사고의 만남

우리는 삶에서 '흐름(flow)'으로 살고, '저량(stock)'으로 평가받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방식은 미분의 순간들—즉 작은 행동의 연속이지만, 세상에 보이는 나는 그 행동들이 쌓인 총합(적분)으로 드러납니다. 바로 적분의 결과인 나, 내 건강, 내 평판, 내 관계, 내 삶이죠.

행동은 흐름, 판단은 저량

시스템사고에서는 흐름(flow)은 시간에 따른 변화량을 의미하고, 저량(貯量, stock)은 그 변화가 누적(적분)된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는 체중계에 올라 체중(저량)을 보고 건강 상태를 판단하지만, 그 체중을 만든 것은 매일의 식습관과 운동량이라는 흐름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함정이 있습니다. 저량은 흐름의 변화에 곧바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저량은 흐름이 있어야 변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행동을 시작해도 결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죠. 지연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지연되어 나타나는 결과마저도 변화량에 정비례하지도 않고, 때로는 역설적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비선형적 지연이며, 시스템사고가 세상의 복잡성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이유입니다.


마라톤에서 경험하는 시스템사고

마라톤을 달리면서 저는 똑같은 경험을 합니다.
20km, 25km, 30km를 넘어가며 ‘그동안의 훈련량’과 '지금까지 달려 온 운동량'의 누적(적분)값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달릴 때마다 심박수라는 흐름이 바뀌고, 그 흐름이 누적되며 몸의 상태라는 저량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저량의 변화가 느리게 드러나기 때문에, 몸이 보내는 경고를 늦게 알아차린다는 점입니다.

저는 한때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을 훈장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달리면서 목격되는 '지쳐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내심 뿌듯했습니다. 마치 인과순환지도에서 ‘쉬지 않고 달리는 노력’ → ‘자기 효능감’ → ‘성취’ →‘쉬지 않고 달리는 노력’이라는 강화 루프에 갇혀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잘 달린다는 선배들도 대회를 마치고 무릎에 물이 차고 침을 맞는 상황을 겪으며 이 후유증을 마치 훈장처럼 여기는 모습을 보고 저는 이렇게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게 건강한 시스템일까?”

그래서 기록 경쟁을 하지 말자, 대신 건강하게 쉬지 않고 달리자고 다짐했습니다. 

‘고통 총량 법칙’과 회복의 시스템

저는 “고통 총량 법칙”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빨리 달리든, 천천히 달리든, 어쨌든 마라톤이라는 시스템은 일정 수준의 고통과 피로를 요구한다고 믿었죠. 그래서 이 고통 총량(Stock)을 빠르게 달려 빨리 채우느냐, 느리게 달려 천천히 채우느냐는 각자가 선택하는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느리게 뛰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기록 경쟁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파리 마라톤 대비 강도 높은 단체 훈련을 마친 뒤에 제 몸이 많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고통 총량 법칙이라는 믿음이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고통을 ‘분산’하느냐 ‘집중’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회복이라는 흐름을 시스템에 의도적으로 도입할 경우, 시스템의 동작 원리 자체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중간 중간의 회복’이라는 흐름의 변화를 주었을 때, 전체 시스템의 효율성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합니다. 짧은 휴식은 근육에 축적된 젖산의 일부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되고, 지속적인 고강도 운동보다 간헐적 휴식을 통해 에너지 저장소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휴식 시간 동안 심박수가 떨어지면 후반부 운동 시 심혈관계 부담이 줄어든다는 논리입니다. 결과물인 저량보다 흐름에 집중해서 살펴보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좀 더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마라톤 대회에서 급수대에서 2분간 멈추어 숨을 고르고, 심박수를 회복시키는 일. 그것이 전체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지렛대 효과가 큰 행동(high-leverage action)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가설을 이번 마라톤 대회에서부터 적용해서 검증해 볼 생각입니다. 다만, 한 번의 실험으로 가설을 채택 또는 기각할 수는 없습니다.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가설을 검증해 보고, 그 결과에 따라 새로운 가설을 만들고, 다시 검증해 볼 따름입니다.

내 상태는 적분의 결과로 드러나지만, 그 본질은 미분 — 즉, 흐름의 질에 달려 있다.

삶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우리의 행동은 그 흐름 위에서 매 순간 결정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과로서의 저량만을 보고 판단합니다. “너는 왜 아직도 그런 상태야?”, “너는 왜 더 나아지지 않았어?”라는 질문은 흐름의 방향성은 보지 않은 채, 적분의 결과만을 보는 세상의 관점입니다.

그러나 시스템사고는 말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흐름의 방향이다.”

오늘 내가 어떤 흐름을 선택했는가?
그 흐름이 쌓여서 어떤 저량을 만들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그 둘 사이의 지연을 이해하고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몸과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결론: 삶도 마라톤도, 적분을 위해 미분을 관리하라

우리는 모두 늙어갑니다. 그리고 그 노화의 과정은 누적의 결과물로 나타나겠죠. 하지만 그 적분은 하루하루 우리가 어떻게 숨 쉬고, 움직이고, 회복하느냐는 미분의 질(quality of flow)에 달려 있습니다. 

마라톤에서 잠시 멈추는 용기처럼, 
삶에서도 때때로 속도를 늦추고 나를 회복시키는 선택이야말로
더 오래, 더 깊이, 더 건강하게 살아가는 시스템사고 전략 아닐까요? 

그래서 지속 가능한 삶이란 결국, 흐름을 감각하고, 그 흐름이 만드는 저량을 돌보는 일 아닐까요?

(마라톤 후기)
계획대로 휴식을 취하는 전략으로 하니 몸의 피로도가 높지 않은채 Schneider Electric Paris Marathon 2025 풀코스를 완주했습니다. 저의 기록은 국가 기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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