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 Ford 헌정 강의: 『Modeling the Environment』 서문에서 발견한 이야기
1. “왜 이 책을 써야 했는가?” – 현실 문제와 모델링의 만남
먼저 Preface 서두에 저자가 2009년 당시 신문에 잔뜩 실렸던 기후변화, 부동산 거품, 신종플루(팬데믹 위험) 얘기를 언급하잖아요. 이 부분이 인상적이에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복잡하고 겹겹이 얽혀 있으니, 쉽게 한눈에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도구, 즉 시스템다이내믹스 모델링이 필요하다”라는 취지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저는 서문의 시작부터 저에게는 중요했습니다. 시스템다이내믹스/시스템사고(이하 SD) 연구자들이 쉽게 빠지기 쉬운 함정이 시스템을 모델링하려는 태도, 또는 시스템을 분석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여러 차례 강조하게 되겠지만, 문제를 모델링하고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 연구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Andy 역시 모범을 보여주고 있네요. 그래서 고맙습니다. 저라도 책을 쓸 때 이렇게 문제를 나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 사람의 ‘인지 한계’를 정면으로 마주한 태도
서문에 “인간의 인지 능력은 제한적이다. 그래서 복잡한 시스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직감적으로 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지난 과거를 해석할 때조차 확실히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거예요.
“Our understanding is also limited by the complexity of the feedback processes that control system behavior. Our actions may be partially erased by the system’s internal responses, and the system’s apparent resistance to our interventions is confusing. Sorting out the effect of delays and multiple feedbacks is beyond our cognitive abilities, so we look to the past for lessons.”
저는 이 부분이 참 겸손한 태도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 예상 못 하는 게 너무 많다. 그러니 모델링으로 시뮬레이션하면서 놀랄 준비를 하자”라는 메시지가 있어요.
이건 마치 “계속 배울 준비가 되어 있자”라는 초대장처럼 보이는데, 그런 태도가 개인적으로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인지 한계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준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도 그렇고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철학의 흐름을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만든 칸트 철학도 그렇고 최근 철학 사조인 현상학도 인지 한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Andy의 글은 다분히 공학 관점이 두드러집니다. 마치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경제학에서 뭐라고 떠들든, 철학에서 뭐라고 말하든 난 관심 없다. 다만, 공학관점에서도 얼마든지 인지의 한계를 발견할 수 있었고, 이런 인지의 한계는 의사결정의 왜곡을 가지고 오기 때문에 시스템다이내믹스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라고 웅변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 보고 궁즉지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결국 만나나 봅니다. 하지만, 공학 관점에서 인지의 한계를 논하는 것이 매력적일 수 있는 이유는 수리적으로, 계량적으로, 공학적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과학적이라는 것입니다. 철학은 논리적으로 인지의 한계를 논하고, 경제학에서의 제한된 합리성은 의사결정에 집중되어 있지만 일부 수리통계적인 접근으로 다룰 뿐입니다. 하지만, 시스템다이내믹스는 대놓고 공학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해하고 다루기 어렵지만, 그만큼 도전할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3. “반직관적 변화”, "정책 저항" – 모델링의 묘미
서문 한복판에서는, 모델을 만들고 나면 가끔은 “처음 예상과 정반대” 결과가 나온다고 얘기합니다.
예컨대 “이 정책이면 분명 득이 될 거야”라고 믿었는데,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니 오히려 더 나쁘게 만드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이건 무조건 갈등이 심각해질 정책”이라 여겼던 것이 장기적으론 윈-윈이 될 수도 있다는 거죠.
“Indeed, the simulations may turn out to be the very opposite of what we expected. Policies thought to make the system better may make it worse than before. Policies thought to produce winners and losers may turn out to deliver win-win results in the long run. These surprises are the key to improved understanding.”
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제가 SD 연구자 중에서도 반직관적 변화(counterintuitive behavior)와 정책 저항(policy resistance)을 강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SD에 대해 강조하는 면이 학자마다 다를 수 있을 겁니다. 저만 옳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나름대로의 논리로 주장할 뿐입니다. 그런데 저의 이런 시각은 Andy의 저런 글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승패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다고 말하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성찰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럼 그런 시스템을 용인할 것이냐?" 어떤가요? 이런 질문에 어떤 답을 할 수 있나요?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이 SD입니다. 그래서 철학적 사고, 비판적 사고와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Andy가 저에게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벤자민 박사, 당신의 연구에 놀라움을 주는 것이 뭔가요?" 저는 Andy가 “학자라면 이런 새로운 발견의 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하지 않나”라는 말하고 있구라고 생각이 들면서, 독자들도 자신만의 편견을 내려놓고 시도해 보라는 권유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이런 열려 있는 태도가 좋습니다.
4. “수학 못해도 괜찮아!” – 문턱 낮추기의 진심
사실 이 대목이 제가 가장 반기는 내용입니다. 뼛속까지 문과인 저에게는 공학과 수학에서 나오는 그들만의 이야기는 넘기 힘든 벽이었습니다. 그런데 SD의 성경책이라고 부르는 John Sterman의 "Business Dynamics"에서도 그렇고 Andy도 그렇고 기타 SD의 전문가, 고수들은 SD를 이해하고 모델링하기 위해서 수준 높은 수학 지식이 필수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어서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This book does not require training in calculus, differential equations, partial differential equations, statistical analysis, or computer programming. Knowledge of these topics is not required, nor is it crucial to your ability to put modeling to use. The crucial requirement is your knowledge of the feedback processes in your system. The models in this book are constructed in a visual manner on the computer. You’ll use your knowledge to select the proper combination of stocks, flows, and feedbacks. The tedious job of generating the simulation results is left to the computer. Your challenge is to use the simulation results to build understanding of your dynamic problem.”
“미분방정식이나 고등 수학 몰라도 괜찮다. 핵심은 알기 쉬운 대수(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와 피드백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많은 학생이나 독자들이 “아, 이거 어려운 수학책 아니야?” 하고 주저할 수 있는데, 저자가 직접 “아니야, 더 중요한 건 시스템에 대한 직관이고 아이디어지, 복잡한 수학이 아니다”라고 문턱을 낮춰 주는 모습이 참 따뜻합니다.
Andy는 University of California at Davis에서 Science in electrical engineering 전공으로 최우수학생으로 졸업했고, 이후 Harvard에서 Applied Mathematics로 석사 학위를 받고(1968), Dartmouth College에서 Public Policy and Technology로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1975). 이런 학문 배경이 있는 Andy의 첫 번째 판 책에서는 이과 계열 사람들을 염두에 두었는지 미적분으로 SD의 수식을 풀어내는 내용이 꽤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Andy는 수많은 교육 경험을 통해 교수법을 바꾼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꽤 귀찮은 작업입니다. 보통의 애정 정도로는 못합니다. 그만큼 SD를 사랑한 방증이라고 보입니다.
5. '지연'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강조
저는 SD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피드백이며 가장 무서운 것은 지연이라고 강의하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와 동일한 의미와 중요성으로 Andy가 '지연'을 강조하고 경계하는 것을 보고 더욱 가깝게 느꼈습니다. Andy는 가장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활용해서 지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Andy가 십대 시절에 눈길에서 운전 테스트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친구들이 줄줄이 미끄러져서 마커(고무 배럴)를 들이받는데, 나도 끝내는 실패했다. 사실은 친구들이 실패하는 것을 보고 나는 충분히 배울 줄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다”는 내용이죠.
이 이야기는 ‘지연(Delay)’이라는 시스템 개념을 일상적·감성적 에피소드로 풀어낸 건데, 즉 “눈길에서 핸들을 돌려도 반응이 늦게 온다. 그래서 의도와 실제 결과가 다르다.”라는 의미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The driving test showed that we had all grossly underestimated the long delay to change a car’s direction when the tires have less frictional grip on the surface.”
Andy가 의도했든 안 했든, 지연이라는 앵글은 앞으로 제가 설명하는 중요한 프레임이 될 것입니다.
6. 신의 한 수, ‘Joe’
서문 후반부에, 저자는 “수년간 가르치다 보니, 학생들이 예전에 내가 배우던 때와는 다른 질문을 던지더라”고 말하면서, 이번 2판에 ‘Joe’라는 가상의 학생 캐릭터를 등장시켰다고 밝혀요. 그동안 강의실에서 받은 질문들 중 반복되는 것들을 Joe 입을 빌려서 제시했다는 거죠.
Joe가 하는 생각과 말을 들어보면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대목이 많이 있습니다.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고, 많은 학생도 그렇게 생각했을거라고 공감하게 됩니다. Andy의 강의 경험의 결정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https://bit.ly/Andy-Tribute-02
※ 본 강의 홈페이지 주소: https://bit.ly/Andy-ME
댓글
댓글 쓰기